일본에 대한 오해와 이해 사이

일본 주재원이 현장에서 깨달은 5가지 진실

by KOSAKA

한국이 달라지고 있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 시장을 흔들고,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이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방산 수출이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시대다. 그 눈부신 성취에 발맞춰, 오랫동안 우리 사회 저변에 짙게 깔려 있던 자학의 정서도 조금씩 걷히고 있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만이 겸손이라 여기던 풍토를 지나, 우리가 실제로 잘해내고 있는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움직임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는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낡은 믿음들이 있다. 특히 ‘일본과의 비교’라는 잣대를 들이댈 때면 그 믿음은 더욱 견고해진다. 우리는 늘 단결하지 못하고, 뛰어난 인재를 시기해 끌어내리며, 기록을 소홀히 하고, 장인정신이 부재하며, 신중함과 정직함도 부족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들.


일본에서 수년간 주재원으로 생활하며 그들과 일상을 함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이 오래된 믿음들을 하나씩 다시 들여다보고자 한다.


침묵하는 조화 vs 시끄러운 연대


가장 흔한 오해는 "일본인은 단결을 잘하고 한국인은 모래알 같다"는 말이다. 이 문장은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설명할 때면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실제로 생활해 보면, 그들이 말하는 '단결'의 실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름을 알게 된다.


일본 사회 특유의 표면적 조화는 '동조 압력(同調圧力)', 즉 모난 돌이 되지 않으려는 문화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체념에 가깝다. 정치판은 파벌 싸움과 암투로 점철되어 단기간에 총리가 교체되는 일이 반복되고, 기업에서도 문제를 입 밖에 꺼내는 것이 금기시되어 잘못된 방향이 오랫동안 방치되다 조직 전체가 침몰하는 장면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해 왔다.


반면, 한국 사회의 시끄러움은 겉보기엔 분열 같지만, 동시에 문제를 빠르게 수면 위로 끌어올려 치유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누구보다 먼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시민들, 광장으로 나와 뜨겁게 의사를 표현하는 문화는 분열이 아닌 '역동적인 단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재를 짓누르는 위계 vs 저항을 뚫고 나오는 돌파력


한국은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을 용납하지 못해 끌어내린다는 이야기도 오래된 통념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이건희가 나왔고, 정주영이 나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무대를 장악하는 수많은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탄생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정점에 서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마냥 온화하게 협력만 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치열한 저항과 검증을 뚫고 기어이 정상에 섰다는 사실이다. 일본 역시 유능한 개인의 목소리가 조직 내의 견고한 위계와 서열 문화에 짓눌려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소니, 도시바, 샤프가 한때의 영광을 잃고 내려앉은 배경에는 유능한 이들의 혁신적인 의견이 위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직된 조직 문화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인재를 짓밟는 것이 마치 한국만의 고질적인 특성인 양 이야기하는 것은 양쪽을 모두 겪어본 시각에서는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기록은 민족성이 아니라 제도의 산물이다


일본의 꼼꼼한 매뉴얼 문화와 기록 습관은 분명 배울 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근거로 "한국인은 기록을 소홀히 한다"고 단정 짓는 것은 비약이다.


우리에겐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절대 권력자인 왕조차 열람할 수 없도록 철저히 독립성을 지키며 써 내려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목숨이 오가는 와중에도 매일의 전황과 비통한 심리 상태를 기록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도 있다.


근현대 일본 기업 문화에서 두드러진 기록 습관이 마치 일본 민족 전체를 관통하는 우월한 유전자인 양 과대 해석된 측면이 크다. 기록은 제도의 엄정함과 문화가 만드는 것이지, 결코 특정 민족의 타고난 속성이 아니다.


장인정신의 그늘과 적응력의 빛


수십 년을 한 자리에서 묵묵히 한 가지 기술을 갈고닦는 일본 장인의 이미지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정신이 동전의 이면처럼 품고 있는 부작용도 함께 직시해야 한다.


변화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 새로운 방식에 대한 불신, 혁신보다 기존의 완성도를 고집하는 관성이 일본의 디지털 전환을 얼마나 뼈아프게 늦췄는지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증명되었다. 팩스와 도장이 행정의 중심을 차지하던 나라가 뒤늦게 전자정부를 서두르며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장인정신의 짙은 그늘을 보여준다.


반면, 후발주자로 뛰어든 한국의 반도체가 세계 정상에 서는 데 걸린 시간이나, 전통적인 음악 산업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 K팝의 놀라운 속도를 보라. 장인정신이 '깊이'를 만들어낸다면, 한국 특유의 폭발적인 집중력과 적응력은 압도적인 '높이'를 만들어낸다. 어떤 자로 재느냐에 따라 승패의 결론이 달라질 뿐이다.


신중함으로 포장된 은폐 vs 소란스러움이 지켜내는 정의


마지막으로 "일본인은 꼼꼼하고 정직하며, 한국인은 성급하고 대충 넘어간다"는 오래된 클리셰다. 그러나 도레이, 고베제강, 닛산, 미쓰비시 머티리얼, 스바루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에서 연이어 터져 나온 품질 데이터 조작 스캔들을 보면 씁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수십 년에 걸쳐 검사 수치를 조작하고, 내부에서 이를 뻔히 알면서도 묵인해 온 사례들은 그들의 신중함과 정직함이라는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겉으로 갈등을 드러내지 않는 문화가, 오히려 내부의 부정을 더 오래, 더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방패막이로 작동한 셈이다.


반면 한국 사회는 부정이 드러나면 격렬하게 반응한다.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피곤할 정도로 파고든다. 그러나 그 피곤한 소란스러움이 불의를 오래 방치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자정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왜곡된 렌즈를 거두며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던 굳건한 믿음들의 상당수는, 일본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본 결과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낸 '이상화된 타자'의 이미지에, 습관적인 '자기비하'를 덧입힌 허상에 가깝다.


일본의 훌륭한 강점들을 억지로 깎아내리자는 것이 아니다. 배울 것은 분명히 배우고 인정해야 한다. 다만, 세상을 더 크고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 눈을 가리고 있는 왜곡된 렌즈부터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낡은 렌즈를 통해 보이는 일본도, 그리고 그것을 통해 비춰지는 우리 자신의 모습도, 이제는 실제와 너무나 큰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인문교양 크리에이터가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