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7일. 스마트폰 화면에 뜬 메일 한 통을 확인하고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습관처럼 찾아간 좁은 흡연소에는 아직 덜 데워진 묘한 온도의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입에 문 담배 끝으로 불을 붙이며 나는 나만 아는, 아주 미세하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짧은 미소가 입가에서 흩어지고 난 뒤, 며칠 동안 나는 빈 모니터 앞에서 턱을 괸 채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내 안의 어떤 조각들을 활자로 깎아내야 할지 오래도록 고민했다.
그리고 4월 21일, 첫 문장을 세상에 내놓았다. "2023년의 봄, 낯선 오사카 땅에 첫 발을 내딛던 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합니다." 그것은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건너간 이방의 도시에서 겪어낸 일상과 상념, 그리고 고립감에 대한 나지막한 독백의 시작이었다. 오사카에서의 시간들은 매일이 새로운 감각의 연속이었고, 나는 그 생경함을 잊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렸다.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이들의 정원으로 눈길이 가게 마련이다. 브런치라는 거대한 생태계에는 이미 깊고 무성한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많았다. 종이책의 물성을 가진 출간 작가들, 가볍게 천 명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인기 작가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름 옆에 '크리에이터'라는 매끄러운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타이틀의 정의와 자격 요건을 검색창에 두드려보던 날부터였을 것이다.
내 안에서 어떤 의식적이고도 무의식적인 갈증이 피어오른 것은. 나 역시 저 견고한 배지를 달고 싶다는, 일종의 소속감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것을 위해 나는 마치 활자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사람처럼 하루하루 글을 써 내려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채어 어떤 날은 하루에 세 편의 글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것은 맹렬한 열정이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태우는 조급증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행운이 찾아왔다. "작가 된 것, 다시 한 번 축하한다"라는 제목의 내 글이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인 '작가의 꿈'에 덜컥 선정된 것이다. 모니터 속의 픽셀로만 존재하던 활자가 물리적인 공간에 전시된다는 사실은 묘한 흥분과 위안을 안겨주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오사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단숨에 서울로 날아갔다. 가족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내 문장들을 눈으로 확인하던 순간은, 분명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벅찬 보상이자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축제는 짧고 일상은 길다. 그럭저럭 400여 편의 글이 서랍 속에 쌓여갔다. 글이 쌓일수록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라는 또 다른 묵직한 꿈이 자라났다. 마감일에 쫓기며 그동안 엮어둔 브런치북들을 정성껏 다듬어 응모했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매일같이 새로고침을 눌러봐도 구독자 수는 200여 명이라는 견고한 숫자에 멈춰 있었고, 조회수 역시 지루하고 평온한 평행선을 달렸다.
그토록 바랐던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은 닿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멀어 보였다. '아, 여기까지인가 보다.' 나는 조용히 체념했다. 한때 활활 타오르던, 어쩌면 나를 다소 지치게 만들었던 그 과도한 열정의 온도는 서서히 식어갔다. 나는 글쓰기의 속도를 늦추고 삶의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로 했다.
브런치라는 무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채 2026년의 새해가 밝았다. 나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일과를 내 삶에 들여놓았다. 슬로우 조깅을 통해 10kg을 감량하겠다는 육체적인 목표, 그리고 일본의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작품 100여 편을 모조리 읽어치우겠다는 정신적인 목표. 거창하면서도 지극히 소박한 궤도 수정이었다.
처음에는 낡은 운동화를 신고 1km를 달리는 것조차 폐부 깊숙한 곳에서 쇠맛이 날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무심하게 두 발을 교차하다 보니, 어느새 3km 정도는 호흡의 흐트러짐 없이 너끈히 소화하는 근육이 생겼다. 시바 료타로의 방대한 세계를 탐험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브런치에 새로운 매거진을 하나 만들고, 그 책들을 읽으며 느낀 감각들을 독후감이라는 형태로 담담히 연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읽히거나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안의 호흡을 고르기 위한 규칙적인 달리기와 같았다. 힘을 빼고 일정한 보폭으로 나아가는 법을 몸과 뇌에 새겨넣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2월 18일, 정확히 언제 던져두었는지도 잊어버린 낚싯대에 작은 입질이 왔다. 무심코 바라본 브런치 앱에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크리에이터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인문교양'이라는, 내게는 제법 무겁고도 정갈한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오... 드디어.' 나는 짧게 탄성을 뱉었다.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겨울 코트 주머니에서 예전에 넣어둔 지폐를 발견했을 때처럼, 포기했던 선물을 아주 뒤늦게 배송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분명 기뻤다. 하지만 처음 브런치에 입성해 그 배지를 열망하던 시절에 상상했던, 샴페인이 터질 듯한 폭발적이고 요란한 기쁨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차분하고 정제된 종류의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차분함의 이면에는 묵직한 책임감과 묘한 숙제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나는 단순히 내 안의 열기나 고립감을 배설하듯 적어내는 것을 넘어, '인문교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무게와 깊이를 담아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400편의 글을 지나오며 완전히 식어버린 줄 알았던 열정은,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달리기와 독서를 통해 조금 더 단단하고 지속 가능한 근육으로 내 안에 치환되어 있었을 뿐이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여전히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3km를 달릴 것이고, 땀을 식힌 뒤에는 시바 료타로의 지난한 페이지를 넘길 것이다.
그리고 밤이 오면 낡은 키보드 앞에 앉아, 예전보다는 조금 더 느리지만 한층 깊어진 문장들을 지어낼 것이다. 한때 나를 옭아맸던 조급함을 벗어던진, 10kg 가벼워진 몸과 진짜 크리에이터의 호흡으로. 세상의 속도와 무관하게, 나만의 보폭으로 달려가는 이 고독하고도 충만한 레이스는 이제 막 새로운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