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50대 가부장이 읽어본 『가녀장의 시대』

by KOSAKA

나의 세대에게 ‘가장’이라는 단어는 밥벌이의 고단함과 권위라는 이름의 훈장이 뒤섞인 묘한 짐이었다. 아침 일찍 구두끈을 조이며 나설 때, 어깨를 누르는 것은 식구들의 생계였고 그 대가로 집안에서의 발언권을 보장받았다. 그것이 우리가 배운 유일한 가족의 문법이었다.


하지만 이슬아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그 오래된 문법을 경쾌하게, 그러나 아주 단호하게 비튼다. 딸 '슬아'가 집안의 경제적 주도권을 잡고 '가녀장'으로 등극하는 과정은, 50대인 나에게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자 묘한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단순히 '여자가 가장이 되었다'는 성별의 반전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가 돈을 벌고, 누가 그 돈을 관리하며, 그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가 어떻게 재정의되는가를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작가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미국 드라마 <오피스>의 유머 감각에 많은 부분 기댔다고 고백한 바 있다. 확실히 소설 곳곳에는 상황을 객관화하면서도 뼈 있는 농담을 던지는 특유의 '시트콤적 리듬'이 살아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각은 조금 더 복합적이었다. 문장 사이사이에서는 무심한 듯 정교한 묘사를 이어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건조한 감각이 읽히고, 일상의 우연을 철학적 사유로 끌어올리는 폴 오스터의 지적인 리듬이 전해졌다. 또한 배우 박정민의 에세이 『쓸만한 인간』에서 느꼈던, 자신을 낮추면서도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 발칙하고도 영리한 재미가 이 소설에도 가득했다. 이러한 문학적 즐거움 덕분에 가부장제의 해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가 서글프기보다 경쾌한 지적 유희로 다가왔다.


소설 속 슬아는 부모를 자신의 출판사 직원으로 채용한다. 아버지 웅이 씨는 이제 집안의 어른이라는 무게감 대신 '웅무(웅장한 업무)'라는 직함을 달고 요리와 청소를 전담한다. 어머니 복희 씨는 교정교열과 행정 관리를 돕는다. 이 지점에서 나는 책장을 덮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내 딸이 나에게 월급을 주며 집안일을 맡긴다면, 나는 기꺼이 그 '피고용인'의 위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슬아가 아버지 웅이에게 건네는 월급은 단순히 효도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이며,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헐값에 취급받던 '가사 노동'에 제값을 매기는 행위다. 50대 남성인 내가 평생 당연하게 누려왔던 아내의 밥상과 깨끗한 옷가지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뼈를 깎는 '무상 노동'이었음을 이 소설은 아프게 꼬집는다. 슬아는 웅이 씨를 직원으로 고용함으로써, 그가 한 번도 제대로 수행해보지 않았던 '돌봄의 가치'를 일깨운다.


소설 속 아버지 웅이는 서툴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한다. 딸의 기분을 살피고, 딸이 마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성껏 국을 끓인다. 이 장면들을 읽으며 나는 자꾸만 목이 메었다.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은 사랑을 '돈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만 증명해왔다. 하지만 퇴직 후, 혹은 경제력을 상실한 후의 아버지는 집안에서 갈 곳을 잃기 마련이다.


슬아가 제안한 '가녀장' 체제는 어쩌면 권위의 실추가 아니라, 웅이 씨 같은 아버지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부장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딸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숙련된 가사 노동자로서 인정받는 삶. 그것은 꼰대 소리를 들으며 소외되는 노년보다 훨씬 생기 있고 존엄해 보였다.


기존의 가족 관계가 '은혜'와 '희생'이라는 단어로 묶여 있었다면, 슬아와 웅이의 집구석은 '계약'과 '존중'으로 지탱된다. 부모는 딸의 재능을 존경하고, 딸은 부모의 노동을 존중한다. 여기서 50대 독자인 내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점은 '부채감의 소멸'이다.

우리는 흔히 부모가 자식을 키운 것을 '빚'으로 여기고, 자식은 그 빚을 갚기 위해 효도한다. 하지만 슬아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대접받는다는 원칙을 세움으로써, 가족 관계를 감정의 늪이 아닌 투명한 유리창처럼 만든다.


50대인 내가 내 부모에게 느꼈던 그 무거운 책임감과, 내 자식에게 은연중에 기대했던 보상 심리가 이 소설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사랑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노동력을 사고파는 관계다"라는 선언은 차갑게 들릴지 몰라도, 사실은 가장 건강한 거리두기를 가능케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 딸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 딸도 슬아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영토를 구축하고, 나에게 "아빠, 이제 내 방식대로 해볼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기꺼이 소설 속 웅이 씨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딸의 마감을 응원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고 싶다.


『가녀장의 시대』는 30대 여성 작가가 쓴 발칙한 소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길을 잃은 50대 남성들에게 던지는 구원 서사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을 호령하는 호랑이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가족 안에서 누군가를 돌보고 살피는 일만으로도 당신의 삶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웅이 씨가 딸이 차려준 일터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듯, 나 역시 권위라는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관계의 문을 열 준비를 하게 된다.


글을 마치며, 나는 이 시대의 모든 내 또래의 아버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우리가 지켜온 가부장의 세계는 이미 저물고 있다. 그것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딸이 세운 새로운 성벽 안에서 기꺼이 행복한 백성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슬아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서늘한 통찰은 나에게 '권위 없는 평화'가 얼마나 달콤한지를 가르쳐주었다.


밥벌이의 성스러운 고통을 딸에게 물려주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그 짐을 짊어질 만큼 단단해진 딸의 어깨가 대견하다. 『가녀장의 시대』는 나에게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가족 사진첩처럼 느껴졌다. 이제 나는 기꺼이 나의 '가녀'를 왕으로 모시고, 그 곁에서 묵묵히 밥을 짓는 웅이 씨의 마음으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


운 좋게 브런치 독서 챌린지에 선정되어 선물처럼 배달된 이 책은, 내게 낡은 가부장의 허물을 벗고 딸의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좋은 텍스트를 발굴하고 작가들에게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브런치의 혜안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