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편도

그래서 행목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by KOSAKA

인생이 편도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건, 대개 몹시 사소한 순간이다.


이를테면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일요일 오후의 정적 속에서, 잘 갈린 원두에 뜨거운 물을 천천히 내릴 때 같은 것들 말이다. 드리퍼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커피 가루를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 이 공간을 채우는 고소한 향기도, 창문을 두드리는 규칙적인 빗소리도, 결코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일회성 사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누구나 손에 쥐고 있는 티켓이 돌아올 수 없는 편도라는 걸 알고 있지만, 평소에는 그 사실을 주머니 깊숙이 쑤셔 넣고 잊은 척 살아간다.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맥주 파티라도 열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녀석은 꽤나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는 역무원 같아서, 결코 뒤로 가는 법이 없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간절하게 과거를 그리워하는지, 혹은 얼마나 뼈아픈 후회를 가슴에 품고 있는지 따위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다.


열차는 그저 무표정하게 선로 위를 미끄러져 갈 뿐이고, 우리가 지나온 간이역들은 창밖의 짙은 안개 속으로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진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며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나,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운 상실감에 몸을 떨던 밤들도 열차의 단조로운 진동 속에서 조금씩 마모되어 간다.


가끔은 열차의 비상벨을 누르고 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 골목에서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꺾었더라면" 하는 식의 부질없는 가정들.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근사한 곳에 도착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식의 상상 말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런 종류의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프로그램에는 취소 버튼이 설계 단계부터 빠져 있다. 규칙은 지독하리만치 심플하다. 오직 전진할 것. 그것뿐이다.


내 생각에, 이 긴 편도 여행에서 중요한 건 종착역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느냐가 아니다. 어차피 그 끝에는 '죽음'이라는 이름의 텅 빈 대합실과 차갑게 식은 공기만이 있을 뿐이니까.


중요한 건 열차 안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시간을 죽이느냐 하는 문제다. 어떤 이는 창밖의 풍경이 변하는 걸 응시하며 적당히 칠링된 화이트 와인을 홀짝이고, 어떤 이는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이와 짧지만 다정한 대화를 나눈다.


또 어떤 이는 그저 구석 자리에 처박혀 낡은 소설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것이 당신의 여행인 이상, 틀린 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클래식 음악을 듣고 누군가는 헤비메탈을 듣겠지만, 열차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속도로 달린다.


인생은 되감기 버튼이 고장 난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와 비슷하다. 테이프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우리는 그 위에 매 순간 새로운 소리를 덧입히며 나아간다. 때로는 음질이 조악하고 기분 나쁜 노이즈가 섞일 때도 있겠지만, 그 노이즈조차도 '지금'이라는 유일무이한 트랙의 일부다.


한 번 녹음된 소리는 지울 수 없다. 그저 그 위에 다음 소리를 쌓아 올릴 뿐이다. 설령 그것이 불협화음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모여 결국 당신이라는 단 하나의 교향곡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목적지'에 도달하면 모든 갈증이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의 목적은 도착이 아니라 이동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마시는 미지근한 캔맥주, 창가를 스치는 이름 모를 나무들의 실루엣, 그리고 가끔씩 찾아오는 설명하기 힘든 고독감. 이 모든 보잘것없는 조각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실체를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이 편도 열차의 진동을 즐기면 된다.


완벽하게 차가운 맥주 한 잔과 적당한 볼륨의 재즈, 그리고 가끔씩 창을 때리는 빗줄기 정도만 있다면 이 여행은 그리 나쁘지 않은 셈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꽤 근사하다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건, 지금 당신이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리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진실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돌아갈 수 없기에, 비로소 현재라는 좁은 틈새를 온 힘을 다해 살아낼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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