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남겨야 하나
젠가 블록을 한 번이라도 뽑아본 사람은 안다. 그 손끝의 감각을. 살짝 건드려보고, 흔들림을 가늠하고, 혹시나 싶어 다른 블록으로 옮겨가는 그 망설임을.
탑은 멀쩡해 보이지만 이미 속은 비어 있다. 어느 층은 하나만 남았고, 어느 층은 간신히 두 개가 버티고 있다. 그래도 탑은 서 있다.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분명히.
인생이 꼭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뽑아낸다. 젊음을 조금 쓰고, 건강을 조금 쓰고, 한때 소중했던 관계를 슬그머니 빼낸다.
처음엔 두꺼운 층에서 뽑으니 탑이 꿈쩍도 않는다. 그래서 용감해진다. 더 깊숙이, 더 자주. 야망이라는 이름으로,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어쩔 수 없다는 이름으로.
문제는 뽑아낸 블록을 탑 위에 다시 올린다는 데 있다. 규칙이 그렇다.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탑은 점점 높아지고, 무게중심은 자꾸 어긋난다. 아래는 허하고 위는 무거워진다. 젠가의 공식적인 패배 조건은 탑이 무너지는 것이지만, 실은 그전부터 이미 위태롭다. 무너지기 훨씬 전부터.
나는 종종 지나온 시간을 젠가 탑처럼 들여다본다. 삼십 대에 뽑아낸 블록은 무엇이었을까. 잠이었다. 여유였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오후였다. 그것들을 뽑아 야근이라는 층 위에 쌓았다. 탑은 더 높아졌고, 나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불렀다.
사십 대에는 몇 가지 꿈을 뽑아냈다. 흔들리는 것 같아서. 그 자리에 현실이라는 블록을 끼워 넣었다. 탑은 여전히 서 있었다.
하지만 젠가를 오래 해본 사람은 또 안다. 탑이 무너지는 순간은 대부분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뽑은 블록 하나가 방아쇠가 된다. 그 블록이 특별히 나빴던 게 아니다. 그냥 그게 하나 더였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다른 질문을 한다. 어떤 블록을 뽑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블록은 절대 뽑지 않을 것인가. 이 탑에서 끝까지 남겨둬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젠가는 결국 무너진다. 누가 해도, 얼마나 잘해도. 그게 게임의 본질이다. 인생도 아마 그럴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는 몇 번이나 손끝으로 흔들림을 느끼며 멈췄는지, 그 순간을 음미했는지가 남는다. 무너진 후의 소란보다 무너지기 직전의 고요가 더 오래 기억되는 것처럼.
탑은 오늘도 서 있다. 나는 오늘도 한 블록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