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습한 가족 미스터리에 앞서 작가의 트윗이 먼저 떠오르니 이거야 원...
*2013년 2월 1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번역가 출신의 소설가로 이제 고인이 되신 이윤기와 《화산도》의 김석범을 떠올릴 수 있다면, 기자 출신의 소설가로는 김훈과 고종석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난해 9월 고종석은 그예 자신의 글과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절필을 선언하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절필 선언 전에 출판사 문학동네의 네이버 카페에 연재하였던 이 소설을 출간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절필 선언을 하고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이지만 말이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만큼 시간이 더디 흘러가는 경우는 없다. 병원 대기실에서는 시간이 모지락스럽게도 느릿느릿 흘러간다. 그 게으르게 흘러가는 시간은 불안이나 공포 같은 마음의 그늘을 동반한다. 실상 그 마음의 그늘 또는 긴장 때문에 시간이 더 게으르게 흐른다. 게으른 긴장, 또는 긴장된 게으름이 병원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 풍경이다...” (p.7)
뭐니뭐니해도 고종석을 읽는 즐거움은 어떤 상황을 바라보면서, 그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그의 문장으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이 소설도 위와 같은 그처럼 적확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더디 흘러가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병원 대기실에서 시작된 사색을 ‘게으른 긴장, 또는 긴장된 게으름’으로 수월하게 이끌어간다. 눈을 꿰뚫고 들어온 장면이, 그 너머에 투영되는 고종석의 사색이 참 좋았는데 이 또한 그의 절필 소식과 맞물리니 애처롭다.
“... 글과 사람의 차이에 대해 자주 놀란다. 아니 처음에 자주 놀랐다. 이젠 그런 일을 하도 많이 겪어, 으레 그러려니 한다. ‘글이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다. 글쓰기는 그 주체를 미화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심지어 자학적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학적 글의 저자는 그 자학으로서 자신을 미화한다. 자기혐오를 제 윤리성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글을 보고 반한 사람은 많지만, 만나본 뒤에도 여전히 매혹적인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거의 예외 없이 실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제 고작 서른을 조금 넘겼을 뿐이지만, 사람이라는 종(種)에 대한 신뢰가 점점 옅어진다. 물론 나 자신에 대한 신뢰 역시 마찬가지다...” (p.12)
또한 소설 속의 여러 문장들은 자꾸 현실의 작가에게 고스란히 포개진다. 그러니까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집인 한민형의 위와 같은 생각을 들여다볼 때, 그것은 이제 전직 소설가가 되어 버린 고종석이 생각하는 글 쓰는 이들에 대한 혐오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고종석이라는 작가와 소설 속 한민형을 자꾸 연결시키게 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특히 길게 인용한 아래와 같은 부분은 트위터에서 중구난방, 좌와 우를 가릴 것 업이 그를 향해 덤벼드는 이들과 사투를 벌이는 고종석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나는 트위터에서 고종석의 자기 학대를 발견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한민형의 자기 학대와 슬쩍 연결되기도 한다)
“... 세상과 숨탄것들에 대한 그의 연민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그에게 자기 연민이 거의 없는 듯하다는 점이다. 때때로 그는 자신을 학대하는 것 같다. 그의 연민은 오로지 그의 몸 바깥으로만 향한다. 그 연민이 늘 연대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마음의 연대는 몰라도 몸의 연대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순수이성이나 판단력은 그의 실천이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의 실천이성은 그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격렬한 실천으로까지는 말이다. 그는 늘 자신을 우익이라 말한다. 그건 무슨 겸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실제로 자신을 우익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우익이라 말할 때, 그것은 그가 오래된 의미에서 가족과 국가를 사랑한다거나, 요즘처럼 시장을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다. 민형 형은 자신의 우익됨을 허무주의에서 찾는다. 그가 그렇게 술에 기대어 사는 것도 그의 허무주의가 강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지 않는 것 같다. 자유의지를 믿지 않는 자가 세상의 변화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는 없다... 맨정신으로 얘기할 때, 그는 좀더 살 만한 세상에 대해서 이리저리 구상한다. 약한 사람들의 편이자 하고 소수자들의 챔피언이고자 한다. 말하자면 좌익의 포즈를 취한다. 포즈? 그것은 포즈 이상이다. 그는 타고난 우익이되 노력하는 좌익이다...” (pp.145~146)
솔직히 말하자면 트위터에서의 고종석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힘을 합하여 박근혜의 당선만은 막았으면 좋겠다, 라고 여기는 소시민이었던 내게 노빠와 문빠 운운하며 그들 때문에 아마도 박근혜가 당선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그의 냉철한 판단이 싫었던 탓이다. 하지만 소설 속 한민형의 자리매김을 보여주는 몇몇 부분들을 보면서 고종석이 느꼈을 외로움을 조금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정치적인 면에서 양자택일만을 강요하며 절대 제3의 길을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온전한 자유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그러한 자유주의자를 지향하는 고종석으로서는 자신의 생각을 대중적으로 표현하고 이를 납득시키는 일에서 아주 진이 빠져버린 것이 아닐까.
그건 그렇고 여하튼 소설로 돌아가자면, 그 구성이나 이야기 자체가 큰 울림이나 떨림을 주는 편은 아니다. 소설은 우리가 흔히 가족 혹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갖게 되는 어떤 안정감과 따뜻함 대신 소설은 음습하기 그지없는 불온함과 차가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존속 살해나 근친에 의한 추행이 엄청난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 오래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리 대단한 소재는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형식적인 면에서 차용하고 있는 추리 소설의 기법 또한 너무 노골적이어서 실망스럽다. 소설은 그 앞부분에서부터 ‘어떻게 그런 상황을’ 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비정상적인 가족’을 운운하며, 또한 그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아 ‘혐오’를 자아내는 것이라고 상기를 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궁금증 유발의 도화선이 될 수는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거의 같은 수준에서 진행된다면 오히려 독자로서는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언제 터질 것인가 하는 초조감이 어느 순간 지루함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향후 어떻게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절필을 선언한 고종석의 마지막 소설, 이라는 타이틀에 후광을 입히는 결과물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물론 이러한 평가에 고종석은 코웃음이나 치고 말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의 글을 좋아하였던 독자 중의 일인으로, 그가 그의 이름이 갖는 가치를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 고종석이 고종석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일단 트윗에서 한 걸음 비켜 나셔서...
고종석 / 해피 패밀리 / 문학동네 / 207쪽 / 2013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