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 《광신자들》

섣부른 폭탄 돌리기로는 설명될 리 없는 이 청춘들의 어리광의 진원지...

by 우주에부는바람

“감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오늘의 십 대, 이십 대는 가방에 책이 아닌 폭탄, 혹은 무기를 들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 무기는 경쟁과 착취, 구조적 폭력과 비대화된 이기주의의 이름을 갖고 있다고 보입니다...” (p.6)


대부분의 국내 소설들에서 작가의 말이 책의 맨 마지막에 자리하는 것에 비하여, 이번 주원규의 소설에서는 그 작가의 말이 책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작가의 말이 소설 전체를 고스란히 축약하고 있다. 소설을 통하여 작가는 그야말로 ‘감상적으로’ 오늘날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의 나아갈 바를 모르는 방향 잃은 폭력성을 그야말로 비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사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사건 전개는 주원규의 전작인 《열외인간 잔혹사》에서도 나타난 바, 이를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일련의 스타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스타일은 아이와 성인의 경계에 있는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를 향한 카니발리즘과 같은 도발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끌어들이기에 나쁘지 않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물로서의 소설이 가지는 완성도를 편들기는 힘들다.


“... 십 대란 나이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는 건 인성교육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는 이들의 철저한 환상과 착각에 불과하다. 십 대, 그것도 학교에서조차 받아주지 않는 존재들에게 어느 순간 찾아드는 무모함, 사리분별에 대한 근본적 망각은 그들에겐 필연적인 미덕이자 절대의 어리광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p.132)


소설의 주인공은 고등학생 나이인 기와 도와 농이다. 깡다구는 가득하였으나 허약하였던 기, 존재감이 부족한 소녀였으나 무기 제조에 일가견이 있던 농, 기와 농을 아우르며 사업 수완을 가지고 있는 도는 중학생 시절에 만났다. 하지만 농이 만든 사제 폭탄을 동네 양아치와의 시비 끝에 터뜨림으로써 이들은 작은 처벌을 감수해야 했고, 그렇게 헤어졌다가 몇 년 뒤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농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는 목표를 수행하기 위하여, 기에게는 폭탄을 도에게는 총을 건넸다. 하지만 농의 의도와는 달리 기와 도는 또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이 거사에 참여하는 참이다. 기는 여자친구 육돌순에게 사줄 명품백 구매를 위한 자금 삼백만원 때문에, 그리고 도는 자신을 거절하고 욕보인 클럽 정크에 복수를 하려는 목표가 있다. 그러니 엉뚱하게 여의도가 아닌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폭탄이 터지고, 그 후 지명수배된 이들이 서울시 전역을 종횡무진하는 엉터리 같은 사건 전개로 이어지게 된다.


“... 그 폭탄을 누가 넣어준 걸까요. 스스로가 만든 걸까요. 그들 자신이 욱여넣었을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넣어준 걸까요. 폭탄을 넣어준 이들은 분명히 존재할 것인데, 아마도 그 누군가들은 자신들이 친절하게 넣어준 폭탄을 폭탄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위험천만한 폭탄 돌리기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성공과 승리, 심지어 번영과 공생 발전을 외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pp.6~7)


다시 작가의 말로 돌아가 보자. 작가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듯한 불행한 청춘들을 그리고 싶었던 듯하다. 그리고 말 그대로 그들에게 폭탄을 안겨줬다. 하지만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들고 있는 폭탄이 아니라 그 폭탄을 누가 그들에게 건넸는가, 이다. 하지만 소설의 어디를 찾아봐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폭탄의 기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와 도에게 폭탄과 총을 건넨 것이 농이니, 그 농에게서 폭탄의 기원을 찾아야 할까? 그것이 아니라면 농으로 하여금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폭파할 것을 종용한 인터넷 카페인 정크의 교주에게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할까? 그런데 이 여자나 밝히는 존재, 인터넷 카페에서 구루로 통하며 클럽 정크를 운영하고 있는 이 늙수그레한 사내가 우리 시대 청춘들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의 기원을 품고 있는 자로서 기능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이야기일까?


이처럼 실종되어버린 주제와 중구난방의 스타일에 덧붙여 개연성 없는 서사의 전개 또한 작가의 진의를 망치는 또 다른 축이 되고 있다. 기가 우연히 들어간 화장실에서자신의 여자 친구와 알고 지내는 사내의 통화를 엿듣게 된다거나 도를 무시하였던 홍대앞 클럽의 사장이 하필이면 농이 빠져 있는 인터넷 카페의 구루이기도 하였다는 설정 등은 부끄러울 정도이다. 최근에 읽은 작품들 중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다고나 할까.


그것이 어떤 책이든 독자인 내가 아무것도 얻지 못할 책은 없다, 라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다. 좋고 나쁜, 옳고 그른, 재미 없고 재미 있고와 상관없이, 하물며 반면교사의 역할이라도 하는 것이 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읽고 나니 이런 지론조차 살짝 흔들린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하였던가? 시간은 없고 읽어야 할 책은 많은 독자라면 일단 피하고 볼 일이다.



주원규 / 광신자들 / 작가정신 / 216쪽 / 20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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