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수집과 교환에 따라 붙는 이력서의 작성과 배포까지...
“보통의 책벌레는 책을 읽고 공감하는 독자 노릇으로 족하지만 게코스키는 책을 재료로 학위를 얻고 교수직까지 보장받은 사람이었다. 보통의 책벌레는 지갑을 축내며 책을 사 모으는 일도 힘겹지만, 게코스키는 고가의 책을 사고팔아 거액의 수익도 기록하곤 하는 사업가다. 희귀본 거래라는 ‘투기’의 세계와 문학 평론이라는 ‘인문’의 세계가 행복하게 결합한 사례가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니, 역사상 가장 성공한 책벌레가 아니겠는가.” (p.350)
책의 역자는 저자인 게코스키를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영문학 박사 출신으로 대학 강사를 하다가 희귀본 거래업자로 돌아서 그 분야의 (그 대상을 영미 현대문학으로 좁히니 더더욱)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이와 함께 <부커상>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할만큼 그 감식안 또한 인정받고 있으며, BBC 라디오에서 책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맡기도 하였다니 (이 책은 그 프로그램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만들어졌다) 역자의 위와 같은 소개가 과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수집가들은 괴이쩍은 족속이다. 그들은 강박적이면서도 충동적으로, 은밀하면서도 끈질기게 움직인다. 그들은 애독하는 작가의 저작물을 수집하며, 순진하지만 제 나름으로 평가하는 것이 통례다. 그렇지만 로렌스나 처칠 수집가들은 다른 구석이 있다. 그들의 활동에는 어딘지 강팍하고 집착적인 데가 있어서... 섬뜩하다... 이분들은 자신을 영웅과 연관시킴으로써 자아를 충족시키고 감정을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p.83~84)
저자는 우연한 기회를 통하여 희귀본 거래업에 뛰어들게 된다. 친구의 방에서 본 전집류에 꽂혀 비슷한 전집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 얼마 후 그것을 훨씬 비싼 값에 되팔게 된 것이다. 그 후 저자는 어라 이거봐라, 하는 심정으로 희귀본 거래에 뛰어들었고 25년 이상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영문학 박사 출신답게 그는 희귀본의 습득과 거래에 있어 ‘강박적’이고 ‘충동적’이며 ‘은밀’하고 ‘끈질’기지만 ‘강팍’하고 ‘집착’적으로 휘둘리지는 않는다. 그는 책 뿐만 아니라 그 책을 쓴 작가와 그 책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의를 염두에 두기를 잊지 않는다.
“... 전작 수집가 품 속의 문헌은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원천이 된다. 거기에는 특유의 감식 윤리가 요구된다. 수집가 자신과 타인 모두를 사로잡는 품목을 학자의 마음으로 창의적이고 실용적으로 모아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더 공부해야 하며, 감별 능력을 곱게 닦아야 한다...” (p.199)
그는 이러한 관심 속에서 책을 살피고, 책을 대하며, 책을 수집하고, 그 책을 다시 판매한다. 나름의 보이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생존해 있는 작가들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어떤 이들에게 게코스키는 그저 책 사냥꾼이고 (그러니 초판본이니 헌정본이니를 찾아다니며) 그저 책의 유통 과정을 통하여 이문을 남겨먹는 장사치 정도로 비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의문에 싸인 자신의 영혼과 씨름하는 사람에게 책이란 한때 꽃 피웠다가 씨를 맺고 스러져가는 존재이다. 초판본이든 제41판이든 껍데기일 뿐이다.” (p.214) - D.H.로렌스
하지만 작가들과 불편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과는 별개로 책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작가 그리고 작가와 관련된 각종 출판물들을 살핀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책의 이력을 정리하는 작업이며, 또한 그것들에 새로운 이력을 부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의 작업의 결과물을 공개함으로써 (그는 매년 1,2회 정도 자신의 거래목록을 발행하며 www.gekoski.com 사이트에 올려 놓는다) 그러한 이력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한다.
“『롤리타』를 발간할 배포를 갖춘 미국 내 출판업자를 더 이상 찾지 못했을 때, 나보코프는 누군가로부터 올랭피아의 지로디아스에게 원고를 보내보라는 귀띔을 받았다. 듣도 보도 못한 출판사와 편법처럼 손을 잡아야 하니, 눈물을 머금은 마지막 선택이나 다름없었다.” (pp.32~33)
물론 이 책을 통해서도 유명한 영미문학권의 작가들과 그 작품들의 이력을 확인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나보코프,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해리포터 시리즈의 J.K.롤링 등 많은 작가들이 처음에는 출판사를 잡는 일조차 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일단의 문청들은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저자가 정리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대한 평가를 보면, 이 작가가 가지는 유머 감각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잘 읽힌다.
“... 1922년 『율리시즈』가 출간된 이래 엄숙함을 자랑하는 대학 교수나 문헌학자들 치고 이 작품을 칭송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손으로 꼽기 힘들었다. 이 작품이 20세기에 공인받는 걸작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실로 인해 우리는 ‘걸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만스러운 개념인지 되새길 뿐이다.” (p.157)
릭 게코스키 / 차익종 역 /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TOLKIEN'S GOWN & Other Stories of Great Authors and Rare Books) / 르네상스 / 353쪽 / 2007 (2004)
ps1. 책에서 거론되고 있는 작가와 작품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T.E.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 J.R.톨킨의 <호빗>,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연합>, 잭 케루액의 <길 위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D.H.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실비아 플라스의 <거상>, J.K.롤링의 <해리포터와 현자의 돌>,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이야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 T.S.엘리엇의 <시들>, 이블린 워의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그레이엄 그린의 <2년 후>, 필립 라킨의 <높은 창>
ps2. 휘귀본 거래업 종사자인 저자가 지은 책 답게 각종 유명 작가의 유명 작품의 책에 대한 거래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작가의 헌사가 있는 프랑스판 초판본 <롤리타>는 200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모습을 나타냈는데, 호가가 26만 4천 달러였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의 겉표지가 잘 보존된 초판은 9,000달러를 호가하며,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자필 원고는 90,000달러에서 450,000달러 사이의 가치를 지닌다.’ ‘작가의 서명이 담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초판본은 54,000달러를 호가한다.’ ‘자자가 직접 소장하고 있던 T.E.로렌스의 1922년 옥스퍼드 판본 <지혜의 일곱 기둥>의 2001년 크리스티 경매장 낙찰 가격은 126만 달러였다.’ ‘톨킨의 <호빗> 초판본은 54,000달러가 넘는다. 헌사가 씌어진 <호빗> 초판본이라면 135,000달러, 헌사가 씌어진 <반지의 제왕>은 90,000달러 정도는 될 것이다.’ ‘카프카의 <심판>의 원고는 180만 달러를 기록하였는데, 잭 캐루액의 <길 위에서>의 길이 36.3미터짜리 원고뭉치의 낙찰 가격은 243만 달러로 그것을 뛰어넘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의 초판 고급판 100부중 1호와 2호의 2002년 크리스티 경매 낙찰 가격은 46만 달러였다.’ ‘베아트릭스의 <피터 래빗>의 자비 출간된 초판본 250부 가운데 온전한 상태로 보관된 것은 72,000달러를 치러야 구할 수 있다. 만약 출판사 자료실에 보관된 베아트릭스의 <피터 래빗>의 원화라면 180,000달러는 할 것인데, 한 컷당 가격이 그러할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