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

평평하고 순수한 압축 노동자 한탸가 책을 향하여 혹은 한탸가 책과 함께.

by 우주에부는바람

한탸, 매혹적인 이름이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한, 타, 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싶다. 표의와 표음을 뒤섞어 사용하고 있는 우리 문화권에서 아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을만한 이름이다. 한, 은 하나라는 의미로 사용할 수 있고 아주 넓다는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다. 타, 는 나로부터 바깥을 향하는 어떤 폭력을 가리킬 수도 있고 그 폭력이 가해지는 대상을 지칭할 수도 있다. 어쨌든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름이다, 한탸...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삼십오 년간 나는 그렇게 주변 세계에 적응해왔다...” (p.9)


나이 든 노동자 한탸는 전생애에 걸쳐 책과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그는 평생동안 커다란 기계와 씨름해왔다. 하지만 그저 그 기계에 짓눌려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압축되기를 바라는 그것들 안에서 책을 건져냈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다. 그의 집에는 3톤의 책이 있다. 그리고 그는 맥주를 마신다. 책과 맥주는 한탸의 삶을 채우는 변하지 않는 두 가지다.


“... 눈을 든 순간, 예수와 노자가 사라지고 없다는 걸 깨달았다. 터키옥색과 붉은색 치마를 입은 내 집시 여자들처럼 그들도 흰 회칠이 된 계단을 되올라가버렸고, 내 맥주 단지는 비어 있었다. 나는 절뚝거리거나 때로는 한 손으로 짚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너무 시끄러운 내 고독 탓에 머리가 좀 어질어질했다......” (p.60)


그런가하면 만차와 어린 집시여인 일론카가 (이 이름은 책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드러난다. 일론카, 라는 이름이 가지는 체코에서의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은데, 알 수 없다.) 있다. 한탸는 이들을 사랑했지만 그의 사랑방식은 모호하였다. 그가 책을 사랑하는 방식과 그가 여인을 사랑하는 방식은 그래서 닮아 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과 자신의 방식대로만 거리를 없앤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파괴하거나 떠나보내는 것 같지만 실은 그것들을 자신의 내부로 응축시킨다.


“... 발전소에서나 볼 수 있는 제어판이 색색의 버튼 십여 개를 달고 반짝였다. 우리가 손안의 전차표를 무심코 움켜쥐듯 수직 나사가 쓰레기들을 눌러 압착했다... 순식간에 나는 상황을 정확히 이해했다. 저 거대한 압축기가 다른 모든 압축기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고,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에도 상이한 유형의 사람들과 작업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었다. 실수로 그곳에 버려진 책들과 사소한 기쁨도 끝이었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처럼 늙은 압축공들이 누렸던 좋은 시절도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었으니까...” (p.91)


하지만 한탸의 삶은 이제 단번에 뒤집힐 상황에 처해 있다. 소장과의 불편한 관계에도 지속되었던 한탸의 일은 이제 거대해지고 새로워진 기계, 그리고 그 기계에 예속된 노동자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된다. 가속화된 산업화의 결과물들이 인간을 누락시키기 시작하는 시절이 도래했다. 한탸는 그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에 저항할 수 없음도 깨닫는다. 아니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하기로 한다.


“... 압축통 벽에 눌려 내 다리와 턱이 들러붙고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이어진다 해도 결단코 두 손 놓고 천국에서 추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무엇도 나를 내 지하실에서 몰아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자리를 바꾸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의 단면이 내 늑골을 뚫고 들어온다.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온다. 궁극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가혹한 고문을 겪는 것일까? 압축기의 중압에 내 몸이 아이들의 주머니칼처럼 둘로 접힌다......” (pp.131~132)


한탸, 라는 이름 그리고 만차나 일론카라는 이름에 매혹되는 것처럼 작가의 여러 문장들에도 쉽사리 매혹되고 만다. 작가는 한탸, 라는 인물에 시대의 어둠을 투영한다. 작가에 의해 아주 잘 조련된 한탸라는 거울의 매우 평평한 한쪽 면은, 한 시절이 저물고 또 시작되는 어떤 어두운 지점을 조근조근 묘사하며 반사시키기에 적당하다. 폐지 압축 노동자 한탸, 가 그가 평생에 걸쳐 애지중지한 책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는 순간의 묘사까지를 포함하여...



보후밀 흐라발 Bohumil Hrabal / 이창실 역 / 너무 시끄러운 고독 (Prilis Hlucna Samota) / 문학동네 / 142쪽 / 2016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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