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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김소연 《어금니 깨물기》

답은 정해져 있고, 포기할 수는 없으며, 시간은 흐르고...

  책을 펴고 그 안에 엄마, 아버지 같은 단어가 등장하면 일단 긴장하게 된다. 그 단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예의주시한다. 혹시 나의 감정을 엉뚱하게 물들일까 봐 그렇게 된다. 나는 사실 물들여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이 엄마 혹은 아버지라면 더욱 그렇다. 떨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떨쳐냈다. 그래도 떨쳐내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그 핵심에 엄마 혹은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나는 엄마를 보고 배웠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걸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늘상 주먹을 꽉 쥐며 생각해왔다. 지키려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겨우 얻게 된 것들과 꼭 얻고 싶었던 것들을 잘 지키는 것으로써 엄마처럼은 살지 않으려고 애를 써왔다. 면회를 가면 엄마는 유리 벽 너머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엄마는 울기 시작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웃고 농담하면 그제야 울음을 지우고 웃었다. 엄마는 엄마를 끝내고 나의 자식이 되어 유리 벽 너머에 앉아 있었다.” (p.24)


  몇 해 전까지 엄마는 짝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다. 그 대상은 나 혹은 나의 남동생이었다. 노을 지는 홍제천을 거니는 동안 팔짱을 풀려고 하지 않았다. 나와 다투면 남동생에게 그 내용을 곧바로 알렸고, 남동생에게 삐지면 나에게 하소연하였다. 해가 지면 터벅터벅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고, 동네 할머니들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피하였으며, 멀리 떨어져 있는 여동생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종종 다투었다.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 문장이 아니라 맥락이, 맥락이 아니라 노래 비슷한 것이, 노래가 아니라 울먹임이, 울먹임이 아니라 불꽃이, 불꽃이 아니라 잿더미가 비로소 백지 위에 하얗게 쌓인다. 시는 온갖 실의와 실패를 겪어가며 끝장을 본, 한 줌 재인 셈이다.” (pp.74~75)


  햇수로 삼 년 전, 아버지가 폐암 4기 판정을 받았을 때 아버지 다음으로 낙담한 것은 엄마였다. 평생 권위적이었던 아버지는 그 즈음 가장 살가웠는데, 폐암 선고를 받은 이후 엄마에게 집중할 여유를 갖지 못하였다. 아버지의 책상에는 폐암과 관련하여 손수 정리한 A4 용지가 쌓여갔다. 나는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아버지를 실어 날랐고, 코로나로 병원 출입 인원이 제한되기 전에는 엄마도 동행하였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우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능력도 제로였지만 권위나 억압도 제로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의 평등한 일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래 기억하고 이야기 나눌 이미지 몇 가지를 확실하게 선물해주기는 하셨다. 이를테면 전나무 같은 것, 12월이 시작되면 잘생긴 전나무를 가져야 마루 한쪽에 세워두고 자식들에게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매달게 했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전구에 휩싸인 전나무의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했다. 플라스틱이 아닌, 진짜 전나무.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잠시 빛나던.” (pp.109~110)


  이제 엄마는 소녀에서 조금 더 후퇴하였다. 엄마가 내 손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 엄마를 내가 먼저 붙잡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평생 아버지의 눈치를 보았고, 짝사랑하는 소녀일 때 우리 눈치를 보았던 엄마는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데, 그렇다고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내게 알리는데,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와 엄마가 내게 전달하고픈 정보가 자주 어긋난다.


  “몇 해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엄마는 잠깐이나마 혼자 사는 것이 여유 있고 평온하다며 좋아했다. 혼자 살아보는 게 꿈이었는데 여든이 넘어서야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리고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나는 엄마를 만날 때마다 말을 걸기 위해서 질문을 자주 건넸다. 엄마에 대해서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고 싶어 했다...” (p.223)


  어린 시절을 제외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엄마 그리고 아버지를 자주 보고 있다. 주말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로부터 지청구를 들었다. 현 상황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를 답답해하는 나를 향해, 아내는 그런 나와 어머니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해 주었다. 엄마는 내게 하소연하고, 나는 아내에게 하소연하고 있던 셈이다. 답은 정해져 있고, 포기할 수는 없으며, 시간은 흐르고, 삶과 죽음이 서로를 꽉 물고 놓아 주지 않는 것만 같다.



김소연 / 어금니 깨물기 :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  / 마음산책 / 227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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