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들어진 공익광고 같은 책읽기 프로그램으로서의 책...
*2006년 10월 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동화책을 쓰는 아버지 밑에서 사방에 책이 굴러다니는 상황에서 자란 저자가 어떻게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지금의 남편과 함께 책을 관리하면서 어떠한 일들을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서재 결혼 시키기』는, 책(정신적 집성체임과 동시에 하나의 물리적 형체를 띤 육체성을 포함하여)에 대한 경탄할만한 심층 메뉴얼이다.
영국의 비평가 홀브록 잭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은 음식이며, 도서관은 몇 개의 접시에 실려 나오는 고기 요리다. 우리는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좋아하거나 필요해서 먹는데, 대부분은 좋아해서 먹는다."
일주일 전쯤에 여동생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일곱살과 세살의 두 사내아이를 키우는 여동생이 갑자기 책을 몇 권 빌려가겠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도대체 네가 책읽을 시간이 어딨다고 책을 빌려가겠다고 하는 거냐?" 그러자 여동생은 자기도 책을 많이 읽는다면서 TV 프로그램에서 선정해 준 도서 목록중 일부를 주루룩 댔다. 그것들을 모두 보았다는 것이며, 그랬더니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면서 재밌는 것으로 몇 권을 골라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책소개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책을 소개하고 책을 읽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무용론에서 그래도 그렇게나마 책을 읽는 것이 어디냐는 최소효용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는 했다. 나또한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난 까짓 책쯤 안 읽어도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면 족하다, 라고 튕기는 입장이라 별로 말품을 팔지는 않았다.
사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지금도 책읽기를 사뭇 밥먹듯이 즐기는 입장이지만, 책 많이 읽는 사람을 그리 달가와하지 않는 편이다. 지식을 쌓는대만 급급했지 그것을 지혜로 질적 변화시키는 학자가 보기 드물고, 환경론자에게 쓸데없이 나무나 배어낸다는 욕을 먹어도 유구무언일 책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책을 읽는 일이야말로 현명한 행위라고 버젓이 말하기가 함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책깨나 읽었답시고 이렇게저렇게 되도 않는 논리를 설파하는 고급인력이 가을철 낙엽만큼이나 흔하니 책 많이 읽었다고 어디가서 자랑할 일도 아닌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무슨 원죄라도 되는 것마냥 책읽지 않은 과오를 개그맨에게 삿대질 당하는 시민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러한 프로그램이 출판계의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한다는(소개된 책자가 기하급수적인 판매고를 올리는 반면, 전반적인 출판계의 판매고는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소식 앞에서는 오히려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초점은 지금 당장 어서어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읽지 않고 있는 것이 무서운 일이 아니라 내가 읽지 않고 있음으로 인해 내 다음 세대까지 읽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앤 패디먼의 책은 책을 읽고 사랑하고, 이러한 책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파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보여주는 매우 호감이 가는 책이다. 자식들이 책을 읽도록 만들기 위해 부모의 세대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한 것이다.
동화책을 쓰는 아버지 밑에서 사방에 책이 굴러다니는 상황에서 자란 저자가 어떻게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지금의 남편과 함께 책을 관리하면서 어떠한 일들을 겪었는지를 보여주는 『서재 결혼 시키기』는, 책(정신적 집성체임과 동시에 하나의 물리적 형체를 띤 육체성을 포함하여)에 대한 경탄할만한 심층 메뉴얼이다.
영국의 비평가 홀브록 잭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은 음식이며, 도서관은 몇 개의 접시에 실려 나오는 고기 요리다. 우리는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좋아하거나 필요해서 먹는데, 대부분은 좋아해서 먹는다."
책이 싫으면 읽을 수 없다. 책을 읽는 일은 즐거움일 때 가장 효과적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또는 주어진 책무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제대로 된 책읽기라고 할 수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자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읽을 수 있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책읽기이며, 꽤 높은 수준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시는 천천히 전개되어 나가는데, 그것은 현대의 바쁜 뉴욕인들이 아니라 기원전 8세기 이오니아인들에게 맞추어진 속도이다. 따라서 시가 전개되어 나가면서 우리 속도도 거기에 적응이 될 것이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우리 둘 다 너무 바빠 과연 호메로스를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호메로스를 읽지 않기에는 너무 바쁘다고 생각을 한다."
바쁘다는 핑계도 한두번이다. 우리가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책을 즐기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 책의 탓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습관은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교정받을 수는 있는 성질의것이 아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습관을 교정 받을 수 있는 연령층은 청소년 정도까지 일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만약 자신이 지금 제대로 책읽는 습관을 갖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그냥 그렇게 편안하게 살기를 바란다. 억지로 책을 읽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대신『서재 결혼 시키기』정도는 읽도록 하자. 그리고 자신이 아닌 자신의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주 약간만 시간을 할애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자. 책읽는 습관을 얻는 대신 누군가에게 책읽는 습관을 가지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는 일도 꽤나 의미심장할 듯하다.
앤 패디먼 / 정영목 역 / 서재 결혼 시키기 (Ex Libris) / 지호 /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