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된 부위가 짐작되는 완성된 프라 모델 같아도 맞추는 재미는...
책 수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적은 없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꽤 많은 책의 소유자가 되었다. 모든 수집가들이 그렇듯 어떤 책에는 다른 사람에게 밝히기 까다로운 (나만의) 서사가 깃들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책을 이제 서서히 집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지만, 어떤 책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머물 책과 떠날 책을 선별할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아프다.
“그것은 절대음감이나 향수 장인의 후각처럼 그녀가 가진 재능이었다. 어떤 물건, 정확히 말하면 책에 달라붙어 있는 메아리들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 재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그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이 열두 살 때 시작되었다는 점만 알고 있었다.” (pp.14~155)
《오래된 책들의 메아리》의 첫 번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애슐린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어떤 책을 만질 경우 그 책과 연관된 사람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능력인데, 일종의 사이코매트리 라고 부를만 하다. 부모의 다툼을 피해간 오래돈 책을 다루는 서점에서 그 능력을 알게 되었는데, 서점의 주인 프랭크 앳워터는 어린 애슐린에게 아래와 같이 말해주었다.
“책은 사람과 같단다, 애슐린. 주위의 공기 중에 떠다니는 건 다 흡수하지. 연기, 기름, 곰팡이 홀씨. 그러니 감정이라고 흡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니? 감정도 다른 모든 것처럼 실제로 존재하잖아. 책보다 더 개인적인 사물은 없단다. 특히 누군가의 삶에 중요한 일부가 된 책이라면 더 그렇지.” (p.17)
그리고 애슐린은 우여곡절 끝에 프랭커 앳어터의 뒤를 이어 책의 공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의 주인이 되었고 오래된 책의 복원 작업을 한다. 판권지가 존재하지 않는 두 권의 책 〈후회하는 벨〉과 〈영원히, 그리고 다른 거짓말들〉이 애슐린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 것은 우연일 수 있겠지만, 애슐린이 그 책들에서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운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게 그렇진 않아요. 메아리는 말이 아니라 아주 작은 진동들을 통해 전해지는 감정이자 느낌이에요. 하지만 내가 책을 만졌을 때만 그런 일이 일어나죠. 책 주인이 그걸 읽고 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느낄 수 있어요. 혹은 이번 경우엔 저자들이 그 책을 쓰고 있을 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죠. 그래서 헤미와 벨에게 책에 나오지 않은 뭔가가 더 있다고 확신하는 거예요. 그 책들을 만졌을 때 느꼈거든요. 둘 다 똑같이 배신감과 싱실감을 품고 있었어요. 그리고 둘 다 서로에게 배신당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도 똑같고.” (p.412)
애슐린은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였고 오래된 책의 공간에 머물러왔다. 그리고 이제 두 권의 책 〈후회하는 벨〉과 〈영원히, 그리고 다른 거짓말들〉의 주인공 혹은 저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나선다 그렇게 두권의 책에 등장하는 헤미와 벨이 실존하는 인물임을 밝히는 여정 중에 벨과 핏줄로 엮인 이선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이 인연은 또 다른 운명의 시작이 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많은 의문이 생겼다. 헤미는 벨을 아주 깊게 그리고 절망적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벨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애슐린은 확신했다. 그런데 둘은 어쩌다 그렇게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면서 헤어지게 됐을까?” (p.171)
두 권의 책, 〈후회하는 벨〉에 나오는 ‘어떻게, 벨? 그 모든 일을 겪고서······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 있어?’라는 문장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것 같은 〈영원히, 그리고 다른 거짓말들〉에 나오는 ‘어떻게??? 그 모든 일을 겪은 후에······ 당신이 내게 그걸 물을 수 있어?’라는 문장은 애슐린을 옥죄었다. 그것은 애슐린이 풀어야 하는, 여태 풀리지 않고 있는 매듭과도 같았고, 1940년대와 1980년대를 오가는 추리와 로맨스의 여정 끝에 적절하게 풀렸다. 다행스럽다.
바바라 데이비스 Barbara Davis / 박산호 역 / 오래된 책들의 메아리 (The Echo of Old Books) / 퍼블리온 / 607쪽 / 2024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