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주의자의 책》표정훈

책 읽으라, 는 감언이설의 만발...

by 우주에부는바람

그 많은 책을 읽으면 무엇하냐 싸가지가 없는데, 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을, 지가 읽고 싶은 것만 사고 있네, 투덜대는 아내를, 내 딸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동생을, 너네 집 책꽂이에 있는 책 다 읽은 건 아니지? 의심하는 친구를, 나한테 책을 받을 생각을 하느니 그냥 한 권 더 사는 게 좋을 거야, 책 떼어먹는 여자친구를, 제가 돌아다녀본 집 중에서 가장 많은 책이 있는 집이에요, 라며 둘러보는 직장동료를 두고 있는 나로서는 책에 환장한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무조건 흥겹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책을 읽는 것도 책을 바라보는 것도 책을 수집하는 것도 책을 쓰는 것까지도 모두 좋아하는 듯한, 책의 제목마따나 책을 탐하는 저자의 기록이다.




모두 네 개의 챕터로 되어 있다. <눈을 뜨니 책이 있었다> “가만히 책장을 넘기는 순간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가 펼쳐진다. 나도 없고 책도 없다. 다만 한 줄 한 줄마다 나와 책 사이에 이루어지는 어떤 내밀한 묘합妙合의 순간만이 이어진다.” 책과 관련한 가벼운 에세이들이 모여 있는 챕터...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공부를 하였으며 책에 대해 어떠한 생각들을 하며 살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볼까 4인조를 구성하려다 말았다는 대목 같은 곳에서는 헐, 나도 비슷한 절도의 욕구를 가졌었는데, 라며 맞장구를 치게 된다.


<호모-비블리쿠스의 결정적 한 권> “오늘 내가 이 책 한 권과 만나기 위해 빅뱅 이후 억겁의 세월에 걸쳐 우주가 쉼없이 운행되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우주적 착각.” 작가와 작품, 책을 둘러싼 이들 근친의 관계를, 관음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많이 알아야 이러한 관음의 욕구, 충족시킬 수 있으니 저자는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책을 둘러싼 모험> “가보지 못한 넓은 세상과 만날 수 있는 통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로든지 떠날 수 있는 마법의 창문... 내 아버지의 서가가 그러했듯이 나의서가도 아이에게 그런 곳이 될 수 있기를!” 작품과 작가가 아니라 그들에 의해 세상에 골고루 흩뿌려진 책, 그 부모 품을 떠난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의 책을 향하여 품고 있는 작가의 사색을 보여주는 챕터이다. 책의 겉장, 책의 날개, 서가 등을 포함한 책의 모든 것에 대한 저자의 천착은 아마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읽고 쓴다, 고로 존재한다> “두 발로 땅을 박차며 숨가쁘게 뛰지도 않으면서 달리기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요모조모 궁리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Just Do It 아니 Just Read It.” 책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보다 본격적으로 건드리고 있다. 이러쿵 저러쿵 책에 대해 떠들었지만 어쨌든 그것의 첫 번째 효용은 읽히기 위함이란 진실을 길게 적어 놓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에 앞서 슬쩍 이런 부분을 집어 넣고 있는데 나쁘지 않은 지적이다.


“이 글에서 지금까지 나는 수집해서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는 것’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사실, 읽지 않는 책 수만 권 갖고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납득할 수 없다... ‘책은 읽지 않아도 맛’이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책.’...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지적 허영’ 운운하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적 허영이 남을 깔보거나 자신을 과대 평가하다가 망상의 지경에 이를 정도만 아니라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허영은 억지로 삼가기보다 기꺼이 즐기는 게 좋지 않을까? 요컨대 자신과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지적 허영이 자괴와 자탄보다는 훨씬 더 건강하다...”


지적 허영이라도 좋으니, 혹여 읽지 않아도 좋으니 책이라는 것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일이며, 이에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허영을 독서와 연결시킨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느냐, 갖은 감언이설이 가득한 책이다.



표정훈 / 탐서주의자의 책 :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사철 기록 / 마음산책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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