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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14. 2024

이응준 《국가의 사생활》

'추억의 속도' 로 걸어다니던 '그' 만이 그리울 따름...

  퇴폐적이고 탐미적이던 이응준의 색다른 도전기이다. 하지만 소설은 그 제목만 멋져 보인다. 그마저도 그저 홀로 멋질 뿐 소설의 내용과는 별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제아무리 꼼꼼하게 북한의 말을 연구하고 그들의 일상에 대한 사례를 수집하고 그쪽으로부터 넘어온 사람들을 인터뷰하였다 한들 (사실이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토실토실한 알맹이가 빠져 있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소설은 대한민국이 북한을 흡수통일하고 5년여가 흐른 2016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로부터 십여년도 채 흐르지 않은 시점으로 뭔가 크게 SF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기엔 부족하다고나 할까.) 그리고 통일 이후 완전히 잉여 인력이 되어버린 인민군 출신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폭력 조직 대동강의 일원이 된 사내들, 그리고 이들을 이용하여 또다른 야욕을 꿈꾸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 지하 3층, 지상 6층으로 이루어진 광복빌딩은 지하 1층과 지상 1층부터 3층까지는 은좌가, 지상 4층부터 6층까지는 대동강이 공작한 유령회사가 사용하고 있었다. 지옥의 심장부는 지하 2층과 지하 3층이었다... 통일 대한민국 이남 상류층 남자들이 이북 여성 접대부들을 만끽하는 당대 최고급 룸살롱의 바로 밑에서 희대미문의 조선 인민군 출신 폭력 조직이 어느 스너프 필름에도 뒤지지 않는 리얼 잔혹극을 관객 없이 자주 공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벌어지는 중심에 광복빌딩이 있다. 퇴폐적이고 탐욕스러운 성의 향연장이면서 그 이면에서는 동시에 피 튀기는 사내들의 힘의 경연이 펼쳐지는 그곳에 리강이라는 사내가 있다. 오남철을 단장으로 하는 조직 대동강의 실질적인 2인자이면서 실질적으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기도 한 리강과 그러한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조명도 사이의 살육전, 그리고 이러한 살육전을 은근슬쩍 이용하려는 자들의 쟁투의 소설이다.


  “.. 영문 없는 오남철은 영문 없는 사내들과 영문 없는 자금을 몰고 와 영문 없는 방법들을 몰아치며 통일 대한민국의 대혼란 속에서 암흑가의 무시 못할 보스로 자리 잡았다. 그는 마치 미래의 사건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했으며 그 결과는 매번 소름 끼치게 적중했다.”


  하지만 통일된 대한민국이라는 설정만을 가져왔을 뿐 큰 맥락에서 사회문화적인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소설은 그저 무수한 암흑가의 이야기를 그저 그렇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 다이어트의 개념이 없는 북한에 대해 알고 싶다거나, 통일이 되고 나면 소설에서처럼 (남남북녀라고 했던가) 이북 출신의 나가요 언니들이 즐비하겠구나 미리 한탄하고 싶다면 모를까 그다지 손에 건질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로맨스라고 끼워 넣어진 이남 조직의 2인자로 나오는 윤상희라는 여성과 리강 사이의 연분도 미지근하고, 리강과 마약을 파는 이선우 사이의 불쑥 불거져나오는 인간적 동맹 관계도 튀기만 할 따름이다. 게다가 장군도령이라고 불리우며 리강의 삶에 대한 예측을 보태는 무속인 또한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소설 속 급작스러운 남북 통일만큼이나 급조된 캐릭터들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충무로에 제공할 시나리오를 작성하려다 (작가는 2008년 40분짜리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이 영화로 몇 군데 외국 영화제에 초청도 받았단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여기까지 와 버린 소설은 아닐까 싶다. 어쨌든 나는 저 옛날 계간지 <상상>을 통하여 ‘추억의 속도’로 걸어다니던 작가 이응준이 그립다. 퇴폐적이고 탐미적인 자의식으로 충만하던 그 때 그 시절의 나도 그립다. 

 

 

이응준 / 국가의 사생활 / 민음사 / 261쪽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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