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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3시간전

이유리 《브로콜리 펀치》

어처구니 없지만 빨려 들어가자, 오리무중의 세계로...

  자, 이제부터 밑도 끝도 없는, 아니 그렇지는 않고 그러니까 작가가 엉뚱한 상상력으로 세밀하게 구상한 밑과 끝은 분명 있지만, 어처구니없고 그러면서도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오리무중의, 라고 하기에는 그 격파된 차원의 뿔뿔이 흩어진 조각들이 손에 잡힐 듯 천연덕스럽게 펼쳐지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지만 에이 그런 게 어딨어 하기에는 생생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니 마음의 준비들 단단히 하시라...


  「빨간 열매」

  아버지의 부탁으로 나는 ‘흙과 뼛가루를 섞어 화분,이라고 이제는 부르지만 원래는 유골함이었던 그것에 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을 때 갑자기 베란다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물.’ 이라고... 그리하여 “아버지는 그 뒤로 쑥쑥 자라 화분을 두 번이나 큰 것으로 바꾸어줘야 했고 물도 한 컵으로는 모자랄 만큼 많이 마셨다. 자랄수록 잎이 무성해지고 줄기가 굵어져 이제는 한 그루 나무로 손색없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잔가지나 시든 잎은 좀 쳐내면 더 보기 좋으련만 말만 꺼내도 비명을 지르며 엄살을피우는 통에 할 수 없이 수북하니 멋대로 자라도록 놔두는 수밖에 없었다...” (pp.15~16) 이러고도 소설은 쑥쑥 자라나서 나는 화분이 된 아버지와 산책을 하다가 화분이 된 어머니와 산책하는 남자 P를 만나고, 화분이 된 아버지는 화분이 된 P의 어머니와 눈이 맞아 결혼식을 하여 하나의 화분에 옮겨 심어진 다음, 급기야 둘 사이에서 빨간 열매가 만들어졌고, 나와 P는 그 열매를 반으로 쩍 갈라서 맛있게 먹었고, 혹시 태몽인가 싶은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


  「둥둥」

  “아마 형규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예를 들면 그날 호미화방이 아니라 신촌 쪽으로 올라가 삼익화방에 갔었다면, 아니면 날이 너무 더우니 그냥 외출하지 말고 인터넷으로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졸업 작품을 무사히 제출하고 대학을 졸업했다면 나는 그대로 유학을 떠났을 것이다. 자유로이 유럽을 떠돌며 실컷 그리고 싶은 걸 그리다가 질리면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비슷한 가정의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아마 동네에 그럴싸한 화실을 하나 차려놓고 가끔 개인전을 열며 유유자적, 긴 파마 머리를 질끈 묶은 화가가 되어 있었겠지.” (p.45) 하지만 은탁은 그날 신촌 쪽으로 방향을 잡아 버스킹 중인 형규를 만나 형규를 아이돌로 키웠고 지금은 형규에게 조공할 (대마초 샌드위치가 들어 있는) 캐리어를 가지고 공항으로 가다가 사고로 물에 빠져 ‘둥둥’ 떠다니는 신세이다. 소설은 더 나아가 은탁은 범우주생연구협회 소속의 외계인을 만나고 그들에게 협조하여 나는 기억이 지워진 채로 아침에 눈을 뜨고, 호미화방이 있는 홍대 쪽이 아니라 신촌 쪽으로 나아갈 계획을 세운다.


  「브로콜리 펀치」

  나의 남자 친구 원준의 오른손이 브로콜리가 되었다. “우리 젊었을 때도 고런 몹쓸 병이 종종 있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손가락이 강낭콩이 되고 버얼건 고추가 되고 그랬지, 응. 그게 다 마음에 짐이 커서 그런다. 누구를 미워하고 괴로워하고 으응, 그런 나쁜 것들을 맘속에 오래 넣고 있다 보면 사람이 버틸 수가 없어져.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이지. 맛난 거 먹이고 푸욱 며칠 쉬게 하면 거뜬히 낫긴 했다마는. 죽을병은 아니긴 해도 꼬라지도 우습고 사는 데도 불편허고 영 몹쓸 병이야. 요즘에는 애들한테 접종도 맞히고 해서 많이 없어졌는가 보더만. 원준이 고놈 허약해졌는가 보다. 나중에 한번 오라 해라. 닭이라도 고아 먹이게.” (pp.91~92) 그 이야기를 들은 안필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는데, 안필순 할머니의 남자 친구인 박광석 할아버지는 산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네 사람은 함께 산에 오른다.


  「손톱 그림자」

  수정이 오년전 사랑하던 사람인 용준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리고 일년전 석기와 결혼했다. 그리고 오늘 용준이 수정의 앞에 나타났다. 용준은 살아 생전에 손톱을 물어 뜯어 여기저기 툭툭 뱉는 습관이 있었고, 그 손톱을 생각하다보면 어찌어찌 수정에게 당도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대로 되었다. 석기는 용준을 두고 일단 회사에 출근하고 수정과 용준은 아침을 먹고, 자신이 죽은 다음 수정의 마음 상태를 수정에게서 듣는다. “한 번에 다 잊은 건 아니고 조금씩, 그러니까 예를 들면 용준 씨가 찻잔이었다고 치면요. 깨지고 나서 반짝이는 부스러기까지 모두 손끝으로 찍어 모아서 갖고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근데 그걸 점점 잃어버리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큰 조각들밖에 안 남았어요. 그 조각들도 원래는 꺼낼 때마다 손이 베일 만큼 날카로웠는데, 갈수록 각을 잃고 뭉툭해져가고.” (p.136) 그리고 반차를 내고 돌아온 석기를 포함한 세 사람은 용준이 교통사고를 당한 장소를 찾아간다. 오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이제야 이루어지는 이별에 대한 슬픈 이야기이다.


  「왜가리 클럽」

  양미씨가 하던 ‘양미네 반찬’ 가게는 결국 망했다. 양미는 이후 개천의 벤치에 앉아 망연한 마음으로 왜가리를 들여다보았고 그 모습이 ‘왜가리 클럽’의 리더 김하영의 눈에 띄인다. 그리고 왜가리 클럽의 다른 이들과 함께 두 주에 한 번 개천에 나가 왜가리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 하지만 왜가리는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같은 무게로 여기는 것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그도 그럴 것이 고기를 잡았다고 해서 왜가리가 특별히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왜가리에게는 그저 매번 잘 노려서 잘 내리꽂는 것만이 중요했고 그 뒤의 일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두 같았다. 그것이 멋있었다고, 가슴이 뻐근하도록 부러웠다고 말하고 싶었다...” (pp.171~172)


  「치즈 달과 비스코티」

  유명 패션 잡지의 편집장인 엄마를 둔 나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소년이었다. 그러다 열일곱 살 때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향해 말하는 돌멩이를 집어 던진 이후 자신이 돌멩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나는 그날 새로운 취미가 생겼기에 견딜 수 있었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돌멩이라는 돌멩이는 모두 주워다 말을 걸었던 것이다. 저기요? 제 말이 들리나요? 제발 대답해주세요.저 들을 수 있어요. 제발... 물론 모든 돌이 대답해준 건 아니었지만.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귀찮아질 만큼 많이 사귀었다... 나는 이게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초능력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pp.190~191) 나는 엄마의 독촉으로 여러 심리 상담사를 겪었고 그룹 심리 상담을 하다 쿠커라는 이를 알게 되었고, 그와 함께 새로운 돌멩이 친구를 찾으러 갔다가 그만 오래된 돌멩이 친구인 스콧을 잃을 뻔하였다. 그러나 결국 스콧은 찾았고 쿠커랑도 친구가 된 것 같은데다, 쿠커의 놀라운 재능까지 확인하게 된다.


  「평평한 세계」

  “...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팔이 침대를 짚고 누르는 느낌이며 발이 바닥을 디디는 감각이 어딘가 좀 이상했다. 내 몸이 닿는 모든 부분에 몰캉몰캉하고 폭신폭신한 얇은 막 같은 것이 씌워진 느낌이랄까. 나는 어리둥절해서 일어선 채로 잠시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반투명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p.214) 나는 이러한 반투명 현상이 혹시 밥그릇에 있던 얼룩을 먹어서 벌어진 일인가 하고 의심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그리고 반투명이 된 나를 함께 사는 새어머니는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나는 그래서 자유로워진 것인가 싶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새어머니 또한 어떤 남자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반투명의 상황을 겪게 된다.


  「이구아나와 나」

  “... 이구아나는 원래 재호의 전 여자친구가 기르던 녀석인데, 재호는 그때 살던 자취방에서 그 여자와 몇 달가량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자기 짐과 함께 이구아나를 데리고 온 거였다. 깜짝 놀란 재호가 이런 것을 키웠느냐 물으니 전 남자친구가 기르다 떠맡긴 것이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전 남자친구를 욕했는데, 갑자기 이탈리아로 바리스타 공부를 하러 가겠다며 이구아나를 놔두고 사라졌다나.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들으니 천하의 재호도 이구아나에 대해 따지기가 무엇해 유야무야 넘어가고 말았고, 결국 이구아나는 그 집 방구석 어딘가에 놓이게 되었다는 거였다.” (p.249) 그리고 재호의 여자친구는 이구아나를 남겨 놓은 채 재호를 떠났다. 살아 있는 것을 어찌할 수 없어 함께 지내던 이구아나를 데리고 재호는 나의 집으로 들어왔고, 어는 날 이구아나를 남겨 놓은 채 재호도 떠났다. 그렇게 이구아나와 내가 함께 살던 어느 날 이구아나가 내게 말을 건다. 수영강사인 내게 수영을 가르쳐달라는 것인데, 수영을 배워 이구아나의 천국인 멕시코로 떠나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구아나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함께 경포대로 가고 거기에서 이구아나는 바다로 들어간다. 나는 어느 날 맥시코로부터 아무 내용도 적히지 않은 엽서를 받게 된다. 해피 엔딩!!!



이유리 / 브로콜리 펀치 / 문학과지성사 / 304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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