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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울즈 《만티사》

불편하기 그지없는 메타 픽션의 세계...

by 우주에부는바람

만티사라는 제목.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만티사(mantissa)란 특히 문학 작품이나 담론에 덧붙여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부분을 말한다. 그러니까 존 파울즈는 자신의 이 작품을 하나의 완결된 창작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학 작품에 덧붙인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어떤 부분이라고 스스로를 낮추어 부른 셈이다.


만티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작품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소설이 가지는 골격을 마음껏 흐트러뜨린다. 그래서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소설인지 아니면 그저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문학을 대하는 작가 자신의 태도에 대한 소설의 외피를 두른 에세이를 읽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대화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무수한 신화적 인물 또는 신화 내부의 인과관계는 어떠한 시공간적인 배경 설명 없이 나오고 사라진다. 한 마디로 어렵다.


원체 소설을 읽고 나서 소설에 대한 해설을 정성껏 읽는 편이 아닌데 이번만을 어쩔 수 없이 해설을 꼼꼼히 읽는다. 예상했던대로 메타 픽션이라는 포스트 모던 기법이 사용된 소설이라는 설명을 읽는다. 그러니까 픽션인 소설을 그 대상으로 삼은 소설이라는 설명. 게다가 해설자에 따르면 이 소설은 메타메타 픽션. 즉 메타 픽션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 바로 만티사라는 것이다.


작품은 모두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 마일스는 과거를 완전히 잃은 한 사내가 등장한다. 그곳에서 마일스는 델피 박사와 간호사 코리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을 되사리기 위한 특별한 의료 행위로서 성적 유혹을 제공받는다. 어처구니 없는 마일스는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의 아낌없는 의료에 곤두서고 델피 박사와 섹스를 하게 된다.


두 번째 장의 첫머리에서 이 델피 박사와 간호사 코리는 사라진다. 그리고 등장한 것은 므네모시네와 제우스 사이에 태어난 아홉 뮤즈 중 서정시를 관장하며 문예의 여신으로 불리우는 에라토. 그리고 곧 마일스 그린과 에라토 사이의 설전이 시작된다. 이 둘은 신화, 그리고 문학사 속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여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교환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에토스이며 그 현현이었던 델피 박사가 마일스와 나름의 화해 및 섹스를 나눈다.


그리고 네 번째 장에서 이들은 창작자와 창작을 주관하는 여신이라는 서로의 지위를 번갈아 이용하며 상대방에 대한 우위의 점유를 다툰다.


전통적인 소설 속 사건의 전개는 존재하지 않고 극소수의 인물(그것도 한 인물이 변형을 거듭하는)의 대화만으로 장편 소설 분량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이들 인물들간의 관계는 계속해서 역전되고, 그것은 창작품이라는 매개물 또는 창작의 과정에 관여하는 무엇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루어진다. 소설 속의 뮤즈는 창작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차 있고, 이것을 인정하는 창작자 또한 자신의 작업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피력하는 것이 맨살로 드러나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소설에 피와 살이 가득한 육체를 부여하고, 그 육체에 창조의 정신을 덧입힌 다음, 바로 그 육체를 인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제대로 된 이해를 도모하기를 회피하는 듯도 보이고, 고도의 독서 과정에서 창작의 메카니즘에 대한 언질을 찾을 수 있다면 찾아보라는 도도한 자세의 소설이기도 하다.


어쨌든 과거 한 때 문학 사조에 있어서의 리얼리즘의 후퇴를 경험하며,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공부에 여념이 없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수첩에 적게 되는 "...아무리 멍청한 학생도 지금은 소설이 반영의 매체가 아니라 '반성'의 매체라는 것을 알고 있어..." 또는 "창작 단계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작가와 텍스트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존재하지 않아... 작가는 우연한 중개자의 역할을 맡을 뿐이야..."와 같은 문장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여하튼 존 파울즈의 다른 소설에 반하여 이 소설을 읽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아래와 같은 해설자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기 반성적 소설 쓰기에 대한 자기 반성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소설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의 시선으로 만티사를 읽고자 하는 많은 독자들은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기대하고 이 소설을 집어든 독자들은 자신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는 이 낯선 소설에 대해 배신감까지 느낄지도 모른다."


존 파울즈 / 김석희 역 / 만티사(Mantissa) / 열린책들 / 294쪽 / 2004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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