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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슈바니츠《남자 :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

남자라는 종족에 관한 비밀 누설의 기록...

by 우주에부는바람

살다보면 무척 당혹스러운 때가 있다. 누군가 나도 모르는 나를 내 앞에 들이밀 때가 그렇다. 하지만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그렇게 들이밀어 준 내가 정말 나, 라는 느낌이 절실하게 들 때이다. 사실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당혹감에 시달렸다. 게다가 저자인 그는, 그녀가 아니라 남자라는 같은 종족으로서의 동업자(?) 아니던가. 어떤 면에서는 배신 당했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이 많은 비밀들을 누설하고도 같은 종족인 남자들에게서 린치당하지 않고, 글 잘 쓰고 잘 살고 있다니, 남자들이 글을 읽지 않거나 여자들이 글을 읽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이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남자는 단연코 자신이 외부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자아를 체험한다... 그의 그런 자아 체험 방식이 바로 그의 가장 큰 약점을 설명하는 건거가 된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인정할 능력이 없다... 여자는 아프면 엉엉 소리내어 운다. 패배를 어떤 식으로든 해소해야 하는 경우에 여자는 화를 내거나 풀이 죽는다. 손해를 감수해야 하면 애석해한다. 반면에 남자는 그런 일을 당하면 아예 무시해버린다. 연극을 통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해버린다. 어떤 경우에도 그 누구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무슨 기밀누설서, 같은 것은 아니다. 또한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의 성립 과정에 참여한 여성의 역할 또한 꽤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불행한 척 연극을 한다. 연애에 능숙한 여자는 구원자한테 접근할 때 그 점을 철저히 계산에 넣는다. 일이 성사된 후에도 그녀는 주기적으로 불행한 여자 행세를 한다. 그녀가 행복하면 그는 다른 여자를 구원하러 떠나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자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남자의 본질을 끌어낸 여자의 역할에 대한 탐구는 결과적으로 지구상의 가장 특이한 종족과 그 종족과 살을 맞대고 사는 또다른 종족에 대한 결과로 탄생한다.


"...남자는 항상 여자의 알몸을 보고 싶어하는 반면에, 여자는 항상 남자의 벌거벗은 영혼을 보고 싶어한다."


따라서 결국 이 책이 요구하는 것은 여성이라면 특이한 종족인 남성에 대한 이해를 좀더 확고히 할 수 있고, 남성이라면 자신의 특이성을 간파하고 이를 보충하기 위한 자세의 교정에 주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의 의사소통은 대칭적이고 남자의 의사소통은 비대칭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자가 선호하는 것은 대화이고, 남자가 선호하는 것은 일방적 제시다. 그러므로 남자들의 일방적 제시라는 의사소통 방식을 여자들이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책의 구성과 요구는 결국 남성과 여성의 결합, 그러니까 사랑에 대한 저자의 의견 제시로 이어진다.


"사랑의 의사소통은 다른 일반적인 의사소통보다 그 내부의 밀도가 훨씬 높게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연인들의 세계는 일반적인 의사소통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는 것이다. 밀도 높은 구조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랑을 하면 누구든지 각자의 행동을 할 때 이것을 상대방의 행동에 종속시켜 행한다."


물론 그 대척점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도 쉬지 않는다.


"...사랑에서 교감은 서로의 아름다운 확증의 운뮤를 유발하듯이, 갈등은 쌍방간의 평가절하 경쟁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풍요롭게 해주려 하듯이, 갈등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자기와 유사한 거울상처럼 체험하듯이, 갈등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완전히 자신과 다른 존재로 체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부자의 시각에서만 그러하다. 울타리 밖에서 그 사움을 구경하는 사람은 싸움의 당사자드이 점점 유사하게 보인다. 갈등이 그들을 변신시킨다."


처음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작 나를 당혹시킨 것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니라,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멀어져간 여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그게 그렇기만 한 것은 또 아닌 것 같다.


여하튼 사랑을 갈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것이 특이한 종족인 남자에게든, 그런 남자를 가까이에 두고 있거나, 그럴 예정인 여자에게든 말이다.



디트리히 슈바니츠 / 인성기 역 / 남자 :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 / 들녘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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