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맛든 간장 게장 같은 탐닉...
“...항상 소문보다는 비밀이 낫지.”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소설이란 비밀의 공유 같은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재작년에 봤다. 그녀는 진솔한 연애담(이라기보다는 실제한 연애의 기록)을 소설로 적어 내놨고(프랑스에서는 1991년에 발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선(그러니까 2001년에 발매겠지) 실제한 연애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일기장)을 산문으로 내놨다.
“두 가지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약속 없는 고통의 시간, 다른 하나는 오늘처럼 아무 생각 없이 곧 실현될,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실현될, 망연자실한 욕망의 시간이다...”
1988년에서 1990년까지 이어지는 일기장의 대부분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마도 위와 같을 것이다. 프랑스의 문화인사인 48살의 그녀는 러시아의 외교관인 35살의 S와 연락이 되지 않아 고통스러워 하거나, S와의 연락 이후 그를 기다리며 흥분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학하거나 고통의 심연에서 헤매어 다닌다.
“...나는 마취제를 맞아 육체적 고통을 은폐하는 것 같은 잠재적 고통 속에 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끔찍한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1) 더 이상 그를 보지 않는다. 2) 공유되지 못한 열정 속에서 몇 달이란 시간을 ‘잃었다’. 3) 처음 몇 달과 비교해서 이제 그가 날 덜 원하고, 덜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모욕감...”
사랑의 속성인 질투, 불륜의 속성인 열정, 엑조틱의 속성인 욕망 등이 기이하게 혼재되어 있는 작가와 S의 만남은 철저하게 작가 1인칭으로 서술되고 상념된다. 그녀가 아무리 스스로를 비루하고 비참하게 표현한다 하더라도, 글의 주인공은 S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다. 그녀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이 경우 매우 유효하다.
“찬란한 가을 햇볕 아래 반짝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끝없이 작년을 생각한다. 이 열정으로 내 인생의 걸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그것이 걸작품이길 바랐기 때문에 이 관계가 열정이 된 것이다. (미셀 푸코 : 최고의 선은 자신의 인생을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짧은 사랑이었음에도 그 사이 황금기를 떠올리며, 그리고 그 순간에도 자신의 열정과 작품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 자의식 강한 작가는 그 참혹한 순간에도 스스로를 객관화 시키는 일에도 소홀함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혹시 이 여자 실은 S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한 것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창백하게 질려서 한밤중에 깼다.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장 에이즈 검사를 해야겠다는 생각. 죽음과 사랑의 욕망, ‘적어도 내게 에이즈는 남겨놨을 거야.’”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또 음, 그러니까 그 남자가 뿌린 에이즈균이라도 품고 있다는 마음인 거란 말이지... 라며 한숨쉬게도 된다. 여하튼 이 여자, 작가가 맞기는 맞아서, 뭐 이런 허심탄회하고 노친네 한탄하는 시조 같은 글을 쓰고 난리야, 라며 책 들춘 것 후회하는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한 마디, 맛이 제대로 든 간장 게장 같은 잠언 잊지 않는다.
“...그리움과 추억과 사라진 애정으로 눈물 흘리다. 한 남자를 잃는다는 것은 한꺼번에 몇 해를 늙는다는 것, 그가 있었을 때는 흐르지 않았던 그 모든 시간을 한꺼번에 늙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상상 속의 시간들을 한꺼번에 늙는 것이다...”
참혹하고 변덕스럽고 애가 끓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객과화시켜 냉정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나이가 살짝 부럽다...
아니 에르노 / 조용희 역 / 탐닉 / 문학동네 /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