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근엄하지 않은 탐구...
꽤 오랜만에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을 읽은 듯하다. 이탈리아 작가라면 이탈로 칼비노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이 작가가 바로 이탈로 칼비노의 추천을 받아 소설을 냈다는 설명을 읽게 되었다.
책을 본 아내는 표지가 무척 재밌네, 라고 했는데 살펴보니 그 디자인 또한 작가가 직접 한 것. 책날개의 설명을 읽어보니 작가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펠리니와 그의 배우를 다룬 단편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는 설명. 이외에도 미국에서 이탈리아어 강사, 트럭 운전사, 정원사, 카페의 기타 연주자로 일을 했고, 호주에서는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그 다양한 경험으로 미루어 소설이 재미없을 리는 없다.
“삶은 의미가 있다 아니면 없다고 믿는 것은 기질 문제다. 만약 삶이 의미가 없다는 확신이 절대적이라면, 삶의 의미는 진화 과정과 더불어 점차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우연한 일이 아니고 그럴 것 같지도 않다.”-카를 구스타프 융.
책의 제목도 순수한 삶이고 그 시작도 융의 삶의 의미에 관한 전언으로 시작된다. 책의 주인공은 조반니라는 몇 권의 책을 낸 역사학자이다. 조반니는 자신의 딸과 며칠간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며, 그 사이 현재의 여자 친구인 M과 G라는 이니셜로 문자 메시지를, 전화를, 이메일을 나누며 다투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꽤나 자유스러운 정신적 풍토를 지닌 조반니는 그러한 자신을 현실에 옭아매려 한다는 이유로 M과 끊임없이 다투지만 동시에 딸에게는 현실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기도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녔다. 그리고 이러한 여타의 과정 안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생,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우리는 사물을 인식하고 싶은 욕망과 새로운 사물을 발견하고픈 욕망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어.”
그가 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이처럼 흔들리는 욕망 사이의 조율 내지는 욕망의 실체에 대한 접근을 위한 행로에 다름 아니다.
“장점은 저마다 그에 상응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야... 장점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특별한 조합을 이루면서 밖으로 나오는 거고, 장점이 발전되려면 그만큼의 특정한 단점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텅 빈 것이 가득 찬 것을 만들어내고, 가득 찬 것이 텅 빈 것을 만들어내기 마련인 것처럼.”
조반니는 이처럼 장점과 단점에 대해 꽤 여러번 말하는데, 그것은 앞에서 말한 그의 이중적인 태도와 맞물려 있다. 장점과 단점이 항상 맞물려 있는 것처럼 그는 상상력과 현실 감각이라는 얼핏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양태를 귀엽지만 치밀하게 합리화시킨다.
“로미오와 줄리엣 얘기는 정보 부족 아니었니? 끔찍하게 불투명한 상황에서 나온 얘기야.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두려움이 깊어진 상상의 결과지.”
그리고 함께 하는 열일곱(열여섯이던가...)의 딸이 자신과의 여행중에 남자 친구와 전화를 하고 문제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은근하고 지적인 질투를 하기도 한다. 쓸데없이 전화를 통해 소통하는 것은 결국 정보의 과잉을 낳고, 세기의 사랑 같은 걸 하게 될 가망성은 사라진다는 투정을 하는 것이다. 자신 또한 끊임없이 M과 접촉하기를 원하면서.
「딸애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울음을 터뜨렸던 몇 년 전 일이 생각났다. 그가 “제발 어린아이처럼 굴지 마라.”하고 말했었다. 그러자 딸아이는 울음을 뚝 그치더니 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난 네 살인걸요.”」
꽤나 심오한 이야기를 딸과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큰 장점이다. 그러니 간간히 유머가 섞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난 이 작가의 보다 젊은 시절의 소설을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자신들의 동족과 다른 동물들과 자연에 대항한 싸움에 자신들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싶어하지 않아... 여자들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증거를 별로 축적하고 싶어하지 않거든... 존재할 줄 알기 때문이야. 존재를 생산하잖아. 기호를 남기는 데 흥미가 없으니까 기호를 남기려 들지 않아.”
여기에 여성에 대한 파악이라는 덤도 따라 붙는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단 한 번 말하는 바에 따르면 순수한 삶이란 우리가 하는 일에 유별나게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순수한 삶에는 뭔가 중요한 기저가 깔려 있는 듯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작가는 중요한 뭔가가 없다고 했지만, 중요한 뭔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탐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 탐구를 통해 그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알기 위한 탐구가 계속되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와 함께 ‘날카로운 지성과 거친 충동적 감정, 마음속 깊은 곳의 불안’이라고 작중 주인공의 불화의 원인은 그대로 소설 전체에 버무려져 있다. 어쩌면 지성과 감정의 충돌로 인한 불안이라고 명칭해도 좋을 그 무언가야말로 순수한 삶의 본질일 수 있지 않을까.
안드레아 데 카를로 / 이승수 역 / 순수한 삶 (Pura Vita) / 민음사 /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