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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미래과거시제》

한계가 없어 보이는 호기심 그리고 이어지는 상상력...

by 우주에부는바람

배명훈의 아무래도 호기심 그리고 뒤를 이은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 아니 뭐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설핏 웃음이 나올 수 있지만 그 생각을 요리조리 연결시키고 쌓고 또아리를 틀도록 하고, 그러면서도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작업의 전과정을 고스란히 살펴보는 즐거움이 있다. 또는 일상이 가지는 평범함을 그 평범함의 한 가운데에서 허무는 것 같은 기이한 경험이 때때로 야무지다.

「수요곡선의 수호자」

“뭐든.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제자리에 깆다놓는 로봇이야. 수요곡선의 수호자지. 공급곡선에는 참여하지 않아. 펑펑 쓰고 원 없이 써. 사람이 만든 건 뭐든지 살 수 있어. 그러라고 만든 시험용 로봇이야. 성공한 시험용 로봇...” (p.19) 무언가 필요한 것을 생산하여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무쓸모하더라도 소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인공 지능이 탑재된 로봇은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실험에 성공하게 되었을까...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다들 별로 안 믿는 모양이지만, 우리 학교 역사학과 격리 실습실은 학생들을 감금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 아니다. 역사학 연구자로서 한 시대를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격리 실습실의 유일한 목적이다. 격리되는 것은 연구자가 아니라 시간이다. 연구자가 감금되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각자의 시간이 묻어 있는 법이어서 연구자를 격리하지 않으면 시간도 제대로 격리할 수 없다.” (p.61) 21세기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세계사적 사건이 이후 우리의 언어 체계에 소설 속과도 같은 변화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 일종의 가상 언어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이한 대체 역사 소설이랄까...


「미래과거시제」

타임슬립과 언어 체계가 교묘하게 섞이며 로맨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SF물이라고나 할까. 대학 시절의 어느 공간에서 만난 (묘하게도 내가 다닌 대학교의 얽히고 설키며 연결되는 건물들이 떠올랐다) 남자 강은신, 그리고 터키의 언어학자의 강연에서 듣게 되는 ‘확정적으로 일어나는 미래의 일’을 암시하는 언어의 사용법이 뒤엉키며 이루어진 혹은 이루어질 만남으로 독자를 이끈다.


「접히는 신들」

“신을 접었다고? ... 외계인을. 종이로 접은 것뿐이니까. 일단은 겉모습만 알 수 있을 뿐이지만. 게다가 여기서는 27미터 종이가 없어서 실물보다 훨씬 작게 접어봤어.” (p.161) 그리고 은경이 문열 열자 내가 맞닥뜨린 것은... “... 우주를 건너 온 여행자. 무엇을 보게 될지 알 수 없고 계획대로 다시 온전히 접힌다는 보장도 없이 2차원 평면으로 쫙쫙 펴진 다음 운반하기 좋은 모양으로 접힌 채 차곡차곡 우주선에 실린 어느 존재의 영혼.” (p.162)


「인류의 대변자」

롯데타워 꼭대기에 우주선이 다리를 연결하고 임시로 주차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의 우주군은 거기에 탑승해 지구를 방문하여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외계인에게 상의할 문제가 있다. 그러니까 곧 있을 대입 시험이 치르는 시간에는 우주선을 움직이지 말아 달라는, 그러니까 소음을 일으키지 말아 달라는...


「임시 조종사」

“(아니리) 옛날 서울 청파동에 지하임이라는 청년이 살았겠다. 나이 스물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서른 넘어까지 진귀한 재주를 익혔으니, 이름하여 로봇 조종술이라. 세상천지 백 명 남짓 지닌 희귀한 재주이되 로봇이 전 세계 열 대 안팎으로 레드 오션이 따로 없었더라. 백수 모양으로 낮에 자고 저녁 용돈 벌러 가기를 수삼 년이나, 일야(一夜)에 귀가하여 우편함 고지서 봉투를 개봉하여 본즉 겉면은 고지서이되 내용은 채용 통지라.” (p.209) 아니리와 진양조, 중모리와 자진모리까지 판소리의 가락에 로봇 조종사 지하임의 일대기를 실었다. ‘장단을 공부하고 운율을 다시 쓰고 단락마다 장단을 표시’하면서 이 기이한 소설을 작가는 성공적으로 끝냈다.


「홈, 어웨이」

“... 마침내 글이 절정 근처에 이르자 홈 관중이 만들어내는 묵직한 소음이 반 시간이나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응원가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한 호흡에 결말까지 써낼 집중력과 긴장감을 얻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p.277) 글 슬펌프에 빠진 소설가 친구에게 한먼지라는 친구는 어플리케이션이 깔린 노토북을 건넨다. 그리고 어플리케이션은 내가 소설을 쓸 때마다 환호성을 내지르고 나의 글에 딴지를 거는 모든 것에 야유를 퍼붓는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나름 괜찮은 소설을 써냈다. 나는 그 독려를 슬럼프에 빠진 다른 소설가에게도 선물한다. 다만 문제는 내가 홈팀을 선택한 것과 달리 그는 어웨이팀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는 것...


「절반의 존재」

“아빠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예요. 판단력이 흐려졌을 수도 있고요. 그랬을 거라고 봐요. 너무 이상한 결정이었으니까. 남은 반을 살리기로 한 결정 말이에요. 보통 이쪽 반은 안 살리니까.” (p.295) 생각 자체만 놓고 보자면 책에 실린 모든 생각 중 가장 충격적이다. 그러니까 오른쪽은 죽었는데 왼쪽을 살린다는 식의 절반이 아니라, 하반신은 사라졌지만 남은 상반신은 살리는 식의 절반이 아니라... 하반신만 남은 자식의 상반신에 로봇을 부착하는 식으로 절반을 살리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알람이 울리면」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마지막에 코끝이 찡해진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가상의 현실, 그러니까 매트릭스를 떠올리면 대충 이해할 수 있기도 하지만 명료하지는 않다. 작가는 “... 서술자 자체가 이야기의 객체이자 소재의 일부다.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지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위가 서술자에게 있지 않으므로, 순간순간 독자는 의지할 대상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라고 작가 노트에서 밝히고 있는데, 소설을 읽고 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배명훈 / 미래과거시제 / 북하우스 / 343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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