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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 《국보》

소설의 내용과 형식을 장악한 가부키의 무대가 현실로 확장되고...

by 우주에부는바람

운전 중 일본에서 이십 이 년 만에 천만 영화가 나왔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전 일본의 마지막 실사 천만 영화는 2003년의 〈춤추는 대수사선〉이다) 〈국보〉라는 제목이었는데 감독인 이상일은 재일한국인이라는 점도 소개되었다. 가부키를 소재로 한다는 영화 〈국보〉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 원작이었다. (감독은 이전에도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악인〉, 〈분노〉라는 영화를 만든 바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간 것도 모른 채, 키쿠오는 이날부터 츠루타유가 가르치는 기타유의 포로가 되어갔습니다. 이번 장도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 이 이야기는 또 다음 기회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상권, p.115)


이미 말한 것처럼 《국보》는 일본의 전통 연극인 가부키를 소재로 삼고 있다. 아니 소재라기 보다는 소설 전체를 가부키로 여겨야 할 수도 있다. 소설의 서술 방식 자체가, 아마도 우리 나라 근대 무성 영화의 변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서술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은 가부키에서 여장 배우 역할을 하는 키쿠오이며, 소설은 곧 이 키쿠오의 일대기이다.


“덧붙이자면 가부키에는 이른바 연출가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연습의 횟수도 적고, 다 함께 만들어간다기보다는 각자 완성해 온 배역을 주역 배우를 중심으로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보여주는 형식에 가깝습니다.

요컨대, 무대 연습 때 배우는 재료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완성품이어야 하는 겁니다.” (상권, p.215)


소설의 초반부에서 십대의 키쿠오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다. 지역 야쿠자인 타치바나파의 두목이었던 곤고로가 죽은 다음 키쿠오는 오사카를 대표하는 가부키 배우인 하나이 한지로에게 맡겨진다. 그곳에서 하나이 한지로의 아들인 슌스케와 함께 여장 배우가 되기 위한 배우 수업을 받기 시작하고, 하나이 한지로는 결국 아들인 슌스케 대신 키쿠오를 후계자로 삼기로 한다.


“생전에 선대 백호는 자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장 배우라는 건 남자가 여자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남자가 일단 여자로 변했다가 그 여자까지 벗어던진 다음에 남는 형태라고요.

그렇다면 변했던 여자를 벗어던진 다음은 그야말로 텅 빈 상태일 겁니다” (하권, p.234)


가부키는 형식이 절대적인 것으로 보이고, 그 배우들은 단순한 도제가 아니라 세습을 통해 계승된다. 친아들이 아닌 키쿠오가 후계자가 되자 슌스케가 집을 떠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소설은 여러 장으로 나뉘는데, 각 장은 시간적으로 큰 간격이 없을 때도 있지만 몇 년이 지난 다음으로 건너 뛰기도 한다. 소설 속의 수많은 등장 인물들은 이 시간들에서 사라지거나 다시 등장함으로써 긴장을 유발한다.


“광인의 눈에 보이는 것이 만약 완벽한 세계라고 한다면, 키쿠오는 이제야 그토록 원하던 세계에 서 있는 거겠지요. 연기만으로 살아온 남자가 결코 막이 내리지 않는 무대에 서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누가 일반인의 가치관을 그에게 강요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권, p.335)


그렇게 소설은 십대의 키쿠오와 그 주변 인물들을 끝없이 따라간다. 그리고 이제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현역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 키쿠오에게서 소설은 끝이 난다. 키쿠오는 모르지만 이제 막 국보가 되었다는 전갈은 도착을 하였고, 키쿠오는 가부키 공연장에서의 연기가 끝나자 거리로 나선다. 하지만 키쿠오는 아직 연기 중인데, 가부키의 무대를 현실로 확장시키는 마지막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다.



요시다 슈이치 / 김진환 역 / 국보(国宝) / 하빌리스 / 전2권 (상✤청춘편青春篇 366쪽, 하✤화도편花道篇 391쪽) / 20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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