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표면 아래에서 요동쳤던 그녀들의...
교토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윤희에게〉를 보았다. 그러니까 보기 시작했다. 이제 막 떠난 곳을 복습한다는 의미였을지 모른다. 짧은 비행 시간 동안 영화를 모두 보지는 못하였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 번 그러니까 마저 보았다. 가끔 그런 영화들이 있다.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미루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 그런. 〈윤희에게〉가 그런 영화였다.
‘윤희’는 고3 수험생인 딸을 둔 중년의 여인이다. 경찰인 남편과 이혼하였는데 간혹 그 남편을 문 앞에서 발견한다. 회사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남자인 오빠는 대학을 갔지만 ‘윤희’는 대학을 포기하는 대신 결혼을 했다. 그 대신 받은 카메라를 하나 받았고, 일본 여행 중에 ‘윤희’의 딸 ‘새봄’이 여러 풍광 그리고 자신의 엄마 ‘윤희’를 찍는 데 그 카메라를 이용한다.
일본 여행은 어느 날 일본의 ‘쥰’이 한국의 ‘윤희’에게 보낸 편지 한 장으로 시작되었다. 발신자가 정확히 보낸 것이 아니고 수신자가 오롯이 받아 안은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듯 몇몇 우연의 요소가 겹친 결과이다. ‘윤희’의 딸인 ‘새봄’이 ‘쥰’의 고모인 ‘마사코’가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다. ‘윤희’는 어느 날 출근 버스에 오르지 않았고, ‘새봄’은 ‘마사코’를 만나 ‘윤희’의 도착 사실을 알렸다.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것 같아.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일본 여행을 떠나기 전 ‘윤희’의 일상처럼 영화의 표면에 큰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새봄’이 잉태되고 성인이 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았던 사랑의 자국이 깊숙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관객들은 결국 알게 된다. ‘윤희’와 ‘쥰’이 만나는 순간 생각보다 크게 감동이 요동치는 것은 그래서이다. ‘윤희’의 현재가 가지고 있던 까닭 모를 공허의 연원이 그렇게 밝혀진다.
“무언가를 숨기고 살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숨기세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
‘쥰’의 현재에 박혀 있는 오래된 가시의 정체 또한 우리는 위의 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 완전히 허물어내지 못한 장벽에 가깝다. ‘쥰’과 ‘윤희’가 만남을 통해 ‘쥰’의 가시가 빠져나가고 장벽에 구멍이 뚫리고 ‘윤희’의 건조하기만 한 구멍이 메꿔지게 될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 속의 그녀들은 한 걸음을 떼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윤희에게 / 임대형 감독 / 김희애 김소혜 나카무라 유코 성유빈 키노 하나 출연 / 105분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