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놓치면 앞으로' 우리는 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2012년 12월 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날에 대선이 있었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탄핵되었습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새누리당은 돌고 돌아 국민의 힘이 되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윤석열은 지금 탄핵 직전에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컥거리는 감정과 함께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려는 씁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리뷰를 쓰려고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자 영화를 향하여, 그리고 영화 속에 드러난 진실을 향하여 이빨을 들이미는 난폭한 글들이야말로 그 씁쓸함의 원류였다. 80년 이후 억압의 세월 속에서 목숨을 걸고 알리고자 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물이었던 80년 광주의 진실이, 이제 백주 대낮에 무지와 몽매 그리고 어두운 영웅 심리에 조종당하는 이들에 의해 희롱당하고 있음을 보고 있자니...
“내 삶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당신은 살아야 해.”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였을 때 이 전직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경호하던 마실장의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영화의 도입부 애니메이션 속에서 실신지경으로 개머리판을 내리찍던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을 향하여 총구를 들이밀었던 군인, 광주의 시민을 폭도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을 향하여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러야 했던 마상렬의 이 외침은 전직 대통령의 암살을 진두지휘하던 김갑세가 26년의 세월동안 소리 없이 간직하고 있던 양심의 울림과 대척점에 있지만 똑같이 선명하다. 그리고 이 외침과 울림을 모두 배태시킨 원인 제공자의 자리에 그가, 전직 대통령이 있다.
구데타를 통해 나라를 장악하고, 자신의 지위를 곤고하게 위해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그는 아직도 (영화 속에서나 영화 밖에서나) 건재하다. 그에 의하여 한 쪽은 폭력을 휘두른 자가 되고, 다른 한 쪽은 폭력에 희생된 자가 되었고 아직도 이 대치는 여전한데도 그는 느긋하다. 영화 속의 김갑세가 원하였던 바처럼, 그가 자신의 구데타와 광주의 학살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면, 그가 뿌린 폭력이 원인이 되어 아직까지도 여전한 양쪽의 대치 상태를 (댓글들의 대치 상태까지도) 끝낼 수 있을 것인데, 아무래도 이는 요원해 보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를 죽여야 한다고 결정을 내리는 것도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지금이여! 26년이여, 지금을 놓치면 앞으로 우린 또 뭘 헐 수 있겄냐!”
그렇게 나 또한 영화 속의 곽진배가 심미진을 향해 절규할 때 관객석의 나 또한 비슷한 감정이 되었다. 용서받을 생각이 없고 용서받을 자격도 없는 그를 향해 총탄을 날리는 것을 충분히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총탄이 울리는 순간 우리는 암전 속으로 빠져들고 아직 역사는 계속된다. 오늘 아침에도 누군가는 그의 순행을 위하여 버튼을 눌러야 하고, 동시에 그를 향해 증오의 눈빛을 보내야 한다. 그는 여전히 건재하고, 우리 마음의 통합과 민주화를 요원케 만드는 원인 제공자의 자리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외부의 압력 탓에, (강풀 원작의 많은 영화들이 쉽게 영화화된 것과는 달리) 우여곡절 끝에 두레회원으로 불리우는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영화 외적인 히스토리가 어쩌면 우리 사회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처럼 희망을 제공하는 현재와 동시에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영화를 깎아내리고 영화 속 진실을 왜곡하려는 현재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26년 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진실은 26년 후 건달 곽진배, 사격 선수 심미진, 교통경찰 권정혁, 회장 김갑세, 비서실장 김주안, 경호실장 마상렬이라는 영화 속 아픈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32년 후, 여전히 현재의 우리 사회를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독재자의 딸을 사회 대통합을 운운하는 대통령 후보의 자리로 올려 놓았고, 이러한 현상 자체가 진실의 왜곡과 은폐를 너무 수월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건대, 용서 받을 생각이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신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역겹게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이를 현재진행형으로 수행하고 있다. 친일파를 용서하고, 독재자를 용서하고, 학살자를 용서한다. 아니 용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과오를 파묻어 없앰으로써 아예 면죄부를 줄 작정을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용서 받을 생각이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는 없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제작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으고,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하여 훌륭하게 연기를 하고,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것으로 그 결과물에 예의를 다하고 있지만 용서 받을 생각이 없는 사람을 용서할 재간은 없다. 그저 우리는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쓸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폭도로 몰려 죽음을 당한 이들, 그들을 폭도로 알고 총부리를 들이대었던 이들, 그리고 그들의 남은 가족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인간의 도리이다.
26년 / 강풀 웹툰 원작 / 조근현 감독 / 진구, 한혜진, 임슬옹, 이경영, 배수빈, 장광, 조덕제 출연 / 135분 / 2012 (2012)
ps. 그리고 이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명한 트위터리안인 @mettayoon (레인메이커)의 트윗글을 옮겨본다.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길 일이다.
“이번 대선을 이기지 못하면, <26년> 속의 각하의 미소를 봐야 합니다. <두 개의 문>은 수백개의 문으로 늘어날지 모릅니다. <남영동 1985>는 지능적으로 진화할 겁니다. 그리고 5년 후 <MB의 추억>보다 더 지독한 <그네의 추억>을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