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에 붙들려 저쪽을 향하여 보내는 수신되지 못하는 외로움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많아서 원하면 언제든 다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스푸트니크의 연인》 만큼은 집에 없었다. 그래서 더 읽고 싶어서 일 년 정도 애를 태운 다음 얼마 전 중고 서적을 뒤졌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국내 출간 시기는 1999년인데(일본에서는 4월, 국내에서는 6월 출간) 그때 읽었는지 처음 읽는 것인지 헷갈린다. 스미레라는 이름은 기시감이 들었는데, 뮤라는 이름은 처음 보는 것만 같다.
“스미레는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대단한 미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뺨이 홀쭉하고 입은 옆으로 약간 넓은 편이었다. 코는 작고 약간 위로 향해 있었다. 표정이 풍부했고 유머를 좋아했지만 소리 내어 웃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키가 작았고, 설사 기분이 좋을 때에도 반항적인 말투를 사용했다. 립스틱이나 아이펜슬 따위는 태어나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브래지어에 사이즈가 있다는 사실조차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스미레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특별한 것인지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그 반영反映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p.12)
일인칭시점인 소설에서 소설을 이끌어가는 나여야겠지만 실제로 독자들은 스미레가 이끌어가는 곳으로 움직인다. 때문에 나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부분은 흐릿하지만 스미레의 경우는 다르다. 스미레에게 집중하게 되고 어째서 내가 스미레에게 그저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몰입하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스미레가 좋아하기 때문에 뮤 또한 더욱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비즈니스클래스용 라운지로 가서 소파에 몸을 묻고 잠깐 잠을 잤다. 불안한 수면이었다. 세상은 현실성의 핵을 상실하고 있었다. 색깔은 부자연스럽고 세부는 어색했다. 배경은 종이를 누덕누덕 발라 만들었고, 별은 은박지로 만들어져 있었다. 접착제와 못대가리가 눈에 띄었다. 잠시 후 안내방송이 들렸다. 에어프랑스 275편, 파리 행에 탑승하실 손님께서는······.” (p.142)
소설은 사촌언니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난 열일곱 살 연상의 여인 뮤에 빠진 스미레가 뮤에게 고용되고 이어서 뮤와 함께 비즈니스차 유럽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다시 그리스의 작은 섬으로 향했다가 홀연히 사라지면서 변곡점에 다다른다. 일본에 머물고 있던 나는 스미레의 실종 후 뮤의 요청에 따라 그리스의 섬을 향한다. 하지만 나는 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을 뿐, 스미레의 글을 좀더 읽게 되었을 뿐 스미레를 찾아내지는 못한다.
“... 나는 그리스의 이 작은 섬에서 어제 처음 만난 아름다운 연상의 여성과 둘이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이 여성은 스미레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성욕을 느낄 수는 없다. 스미레는 이 여자를 사랑하고 게다가 성욕도 느끼고 있다. 나는 스미레를 사랑하고 성욕을 느끼고 있다. 스미레는 나를 좋아하기는 해도 사랑하지는 않고 성욕을 느끼지도 않는다. 나는 다른 익명의 여자에게 성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무척 복잡하다. 마치 실존주의 연극의 줄거리 같다. 모든 상황은 거기에서 길이 막혀 그 누구도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스미레 홀로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pp.206~207)
뮤는 십사 년 전 어느 사건이 있은 이후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렸다. 뮤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스미레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결국 이야기하였다. 관람차 안에서 갇혀 있으면서 망원경을 통해 또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그 사건 이후 뮤는 많은 것을 잃었다. 머리카락의 색을 잃었고 성욕을 비롯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몇 가지를 잃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절반을 잃었다.
“나는 이쪽에 남아 있어. 하지만 또 한 사람의 나는, 아니면 절반의 나는 저쪽으로 옮겨가버렸어. 내 검은 머리카락과 내 성욕과 생리와 배란과 그리고 살아가기 위한 의지 같은 것을 가진 채, 그리고 그 나머지 절반이 여기에 있는 나인 거야. 나는 줄곧 그렇게 느껴왔어. 스위스 작은 마을의 관람차 안에서 어떤 이유로 나라는 인간이 결정적으로 둘로 찢어져버린 거야. 어쩌면 그것은 무언가의 거래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무언가를 빼앗겨버린 건 아니야. 그건 아직 저쪽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거야. 나는 그걸 알 수 있어. 우리는 한 장의 거울에 의해 격리되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그 유리 한 장의 틈을 나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가 없어. 영원히.” (p.265)
이러한 뮤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 밤사이 땀에 흠뻑 젖은 채 뮤의 침실로 숨어 들었던 스미레는 바로 그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이후 사라졌다. 뮤는 저쪽에 절반을 그리고 이쪽에 절반을 남겼지만 스미레는 그러지 않았다. 스미레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것, 예를 들어 나와 뮤를 남겨 놓고 아예 저쪽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스미레의 어린 시절 사라진 스미레의 새끼 고양이를 닮았다.
“... 달빛은 거기에 있는 모든 소리를 왜곡하고 의미를 씻어내어 마음을 현혹하고 있었다. 그것은 뮤에게 또 하나의 자신의 모습을 목격하게 했다. 그것은 스미레의 고양이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것은 스미레의 모습을 사라지게 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존재할 리가 없는 음악을 연주하여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내 앞에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어둠이 펼쳐져 있고, 등 뒤에는 옅은 빛의 세계가 있었다. 나는 이국의 산 위에 서서 달빛에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주도면밀하게 계산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p.289)
감흥이 크지는 않았지만 역시 하루키를 읽었더니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약간 생겼다. 스미레가 사라진 저쪽에 대한 궁금증이 독자인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쪽의 윤곽을 조금 옅게 만들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인데, 그 윤곽을 다시 짙게 칠하기 아니면 아예 슥슥 그 윤곽을 없애버리기. 하루키를 몇 권 더 읽는다면 후자 쪽으로 아니라면 전자 쪽으로 기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 임홍빈 역 / 스푸트니크의 연인 / 문학사상 / 365쪽 / 2010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