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과 유전공학이 섞인 에코 스릴러 이자 사변 소설...
다미라는 동물행동학자이다. 그녀의 연구대상은 코끼리인데, 원숭이를 연구한 실존 인물 제인 구달을 떠올리면 다미라와 그리 멀지 않다. 다미라는 동시에 상아를 얻기 위해 코끼리를 살해하는 밀렵꾼들과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소설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존재가 된다.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존재가 되는 것은 다미라가 죽은 뒤에도 의식체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커넥톰(신경망을 도식화하는 것)은 연결되어 있는데, 이제야 조금 제 기능을 하네요. 이제 많은 혼란이 올 거예요... 다미라, 나는 알마스 아슬라노프 박사요. 우린 당신을 들을 수 있어요.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당신은 그저 방금 한 것처럼 말하고 싶은 단어를 마음속으로 떠올리면 됩니다. 생각하는 거죠.” (p.60)
밀렵꾼에게 살해당한 다미라의 의식체는 한 세기기 지난 뒤에 매머드에게 이식된다. 다미라가 지키려고 했던 야생 코끼리는 멸종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매머드를 깨웠다. 하지만 매머드의 야생 생존률은 높지 않고, 이를 높이기 위해 다미라가 투입되었다. 코끼리를 가장 잘 아는 이가 직접 코끼리와 가까운 존재인 매머드가 되어 매머드가 야생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돕기로 한 것이다.
“... 이 모든 건 한 세기도 전에 일어났어요. 박사님, 우리가 당신을 다시 불러내려는 이유는 당신이 정말 대단한 인물이기 때문이에요. 당신 세대에서 코끼리 행동 연구에 관한 최고 전문가였기도 했지만······ 야생 코끼리들을 기억하는 현존 인간의 유일한 의식체이기 때문이기도해요. 그들을 아는 유일한 의식체라고요. 물론 우리도 밀렵에서 보호할 수 있는 개체들, 동물원이나 연구 기관에 있는 코끼리들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포획한 코끼리들이죠. 인간들이 길렀어요. 야생 코끼리랑은 다르죠.” (pp.65~66)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여전하다. 매머드 보호구역에는 한 세기가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상아(Tusks)를 노리는 밀렵꾼이 존재한다. 인간의 잔혹한 본성도 남아 있다. 보호구역을 유지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연구자는 거액을 내는 부자에게 매머드 사냥을 허용한다. 그리고 이제 인간의 기억을 가지고 매머드를 이끄는 다미라는 격한 감정으로 밀렵꾼과 사냥꾼을 향하여 돌진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당신이 암컷 우두머리가 되어주길 제안합니다. 당신의 의식체를 암컷 매머드에게 옮기길 원해요. 당신이 그들을 이끌게 될 거예요. 매머드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당신의 지도를 받고 그들은 번창할 거예요.” (p.72)
레이 네일러의 《터스크》는 생태학과 유전공학이 뒤섞인 일종의 에코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을 보호하는 것도 그 동물을 사냥하는 것도, 동물을 멸종시키는 것도 유전자를 이용해 멸종된 동물을 살려내는 것도 모두 인간이 하는 일이다. 인간이 가지는 이러한 다층적이고 다중적인 면모가 이런 소설을 만들어낸 것이지 싶다. 윤리적이고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 온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과거에서 왔다. 각자의 기억 속에서 깨어난 우리는, 충분히 모인 기억 위에 일어서서 그 기억을 발판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상상할 수 있는 미래로 향한다. 우리는 과거로 인해 계속해서 형성되고, 계속해서 그 과거를 재구성한다.” (p.169)
소설을 읽으면서 최근 개봉하여 지금도 여전히 상영 중인 애니메이션 〈호퍼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애니메이션 〈호퍼스〉에서 소녀 ‘메이블’은 ‘사람의 의식을 동물 로봇’에게 담아내는 ‘호핑’ 기술을 이용하여 동물의 세계에 잠입하게 된다. 다미라의 의식이 매머드에게 옮겨졌듯 메이블의 의식은 로봇 비버에게 옮겨진 것이다. 소설 《터스크》의 귀여운 버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레이 네일러 Ray Nayler / 김항나 역 / 터스크 (The Tusks Of Extinction) / 위즈덤하우스 / 215쪽 / 2026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