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소설에 깃들어 있었던 엉뚱하고 야무지지 못하였던 인간이라는 비의.
대학시절 사회과학 학습을 받던 즈음, 동시에 리얼리즘 문학에 대하여 학습을 받던 즈음에 간혹 발자크의 이야기가 튀어 나오고는 했다. 발자크 자신은 왕당파였지만 사실적으로 혁명 후의 프랑스 사회를 그렸던 그의 작품에서는 발자크 자신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한 귀족 계급의 몰락이 또는 바로 그 귀족 계급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들이 너무나도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문학에 있어서 사실주의는 역사의 흐름을 밝히는 위대한 사조에 다름 아니라는 사족과 함께 발자크는 종종 리얼리즘 문학의 전설로 회자된 것이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된 발자크의 반동적인 세계관 역시 그의 작품에 접근하려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귀족을 숭배하고 왕당파를 자처했던 사람이지만, 문학작품에서는 이들 귀족을 서술할 때 풍자가 더욱 예리해지고 아이러니가 더욱 신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몰락이 예정된 이들 계층을 향하여 끊임없이 공감을 보냈으면서도, 소설에서는 혁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문학작품의 세계가 이토록 상반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하나의 결정적인 예가 될 것이다.” - 역자서문
그런 발자크이지만 발자크의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고리오 영감>이 그의 대표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츠바이크의 마지막 작품 (츠바이크는 이미 발자크에 대한 전기를 쓴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발자크에 대한 자료 수집을 통하여 그의 전생애, 그리고 그 후까지를 훑으려 하였다. 하지만 아쉽게 츠바이크는 발자크 평전을 마무리 하기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고, 이 책은 그의 친구 리하르트 프리덴탈에 의해서 편집 출간되었다) 으로 뒤늦게 발자크를 살피게 된 것이다.
“그는 스물두 살에서 서른 살까지는 어떤 장르, 어떤 주문, 어떤 공저(共著)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재빠른 붓은 이 모든 일을 위해서 값싸게 익명으로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 문맹의 시대에 파리 교외 지역의 길거리에 앉아서 몇 수만 주면, 하녀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고소장, 청원서, 밀고장 등 지나가는 행인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써주던 대서방처럼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이 작가는 뻔뻔스럽고도 생각없이 수상쩍은 정치가, 의심스러운 출판인들을 위해 온갖 종류의 가격의 싸구려 공장물건처럼 분량도 다양하게 빠른 책들, 소책자, 팸플릿 등을 썼다.”
이제 막 성장하는 시민 계급의 자식으로 태어난 발자크는 어린 시절 어머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는 못하였으나 법학을 공부하면서 스스로의 살 길을 개척해갈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발자크는 느닷없이 자신의 인생을 선회, 시인이 되기로 작정하고 다니던 일도 그만둔다. 그리고 이때부터 위대한 소설가 발자크로서의 삶, 그렇지만 한 순간도 평탄한 적이 없는 인간 발자크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3년 동안의 사업가 활동에서 얻게 된 10만 프랑의 빚은 그에게 시시포스의 돌이 되었다. 그는 일생 동안 근육을 거의 망가뜨리면서 이 돌을 꼭대기로 굴려올리곤 했지만, 언제나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는 우리의 물질주의 시대에 돈이 가지는 막강하고 악마적인 의미를 체험하였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인 빅토르 위고, 라마르틴, 알프레드 드 뮈세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인 맥락과 모순들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이들 다른 작가들은 낭만적인 것, 고귀한 것, 위대한 것만을 추구한 반면, 발자크는 인간 속에 감추어진 작지만 잔인한 것, 천박하게 추악한 것, 감추어진 폭력을 보았고 묘사할 수가 있었다.”
언제나 발자크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의 허황된 의식이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을 그릴 때는 그리 영민하였으면서도, 실제로 자기 자신은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처럼 영민하지 못하였다. 발자크가 손을 댄 모든 사업은 실패하였고 그때마다 빚이 쌓여갔다. 어쩌면 발자크의 그 엄청난 생산력은 그렇게 써서 빚을 갚아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 발자크는 많은 작품들을 열다섯 번이나 열여섯 번까지도 고쳤다. 그가 20년 동안74개의 장편소설과 그밖에도 단편소설과 스케치들을 썼을 뿐 아니라, 최종작업은 그 자체로 이미 거인적인 이 작업의 일곱 배에서 열 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생각해야만 지상에는 견줄 것이 없는 발자크의 생산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하루에 열두 시간씩 글을 썼다. 저녁을 먹은 후에 잤고, 열두시 혹은 새벽 한 두시에 깨어난 다음 열두 시간 이상 글을 썼다. 그는 동시에 여러 편의 소설을 쓰기도 했고,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 다른 작품을 구상하였다. 심지어 여자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하는 중에도 시간에 쫓겨가며 자신의 소설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애를 썼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빚쟁이들이었다.
“... 가장 잘 조직되고 위대한 두뇌라도 얼마만큼이나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는지 이보다 더 완벽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강한 빛은 강렬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정상적인 사람에게서라면 눈에 띄지 않거나 아니면 선량한 미소로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 약점이나 어리석음이라도, 세계에 대한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셰익스피어에 견줄 만한 발자크의 경우에는 거의 기묘한 것으로 보인다.”
항상 빚에 허덕였지만 발자크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치장하고 자신의 거처를 치장하는 것에 몰두하였다. 말도 안 되는 작품들과 가구들로 자신의 집을 가득 채웠고, 어울리지 않는 지팡이 탓에 세상 사람들의 놀림을 받았다. 이미 귀족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은 작가가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출생 신분을 윤색하면서 오노레 드 발자크, 라고 귀족들이나 쓰는 드, 를 성 앞에 붙여가면서 귀족 신분에 대한 숭배의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마흔두 살 나이로 20년 전 레디기예르 거리에 있을 때보다 더욱 가난해져 있었다... 20만 프랑의 빚, 그것이 그의 노동의 열매였다. 여자들에게 구애했으나 그들은 거절하였다. 집을 지었으나 그 집은 담보로 잡히고 빼앗겼다. 신문을 만들었으나 망했다. 사업을 해보았으나 실패했다. 자기 나라의 의회에서 자리를 차지하려 했으나 뽑히지 못했다. 아카데미 회원에 응모해보았으나 거절당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항상 쫓기는 와중에도 발자크의 삶에서는 여자 또한 빠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하게 깃든 세 명의 여인이 있었는데, 젊은 발자크에게 첫 번째 사랑의 감정을 알려주었고 평생 후원자이자 친구 노릇을 하였던 드 베르니 부인, 평민 출신이면서 남편과 함께 발자크를 존경하였고 발자크의 문학에 대한 가장 정확한 첫 번째 비평가 노릇을 한 쥘마 카로, 그리고 자신의 소설을 보고 보내온 익명의 편지로부터 비롯된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귀족인 한스카 부인이 바로 그들이다.
“발자크의 운명의 법칙은 마지막까지 되풀이되었다. 자신의 꿈을 오직 책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을 뿐 현실에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다는 것 말이다. 말할 수 없이 수고하고 절망적인 희생과 열렬한 기대를 품고서 그는 이 집을 치장하였다. 이 집에서 마침내 얻은 아내와 함께 ‘25년 동안’을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안에서 죽기 위해서 그 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발자크는 1850년 8월 18일과 19일 사이 밤에 죽었다...”
오매불망 자신이 차지하고자 하였던 귀족 출신 한스카 부인을, 그의 남편 한스카가 죽은 다음에도 9년여에 걸쳐 애정을 쏟아 부은 이후에야 차지할 수 있었지만, 인간 발자크의 운명은 혹독하기만 하였다. 결혼 이후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을 해보지 못하고 그는 죽었고, 결혼 생활과 함께 자신의 거룩한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어야 하는 저택에서 그는 내내 병든 채로 있어야만 했다.
위대한 소설 작업을 진행하는 발자크와 그렇지만 엉뚱한 비즈니스로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 넣는 발자크, 엄청난 꼼꼼함으로 자신의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는 발자크와 가치도 없는 예술품을 비싼 값에 사들이는 발자크, 새로운 시민 계급과 노동 계급의 삶을 해박한 통찰력으로 그려낸 발자크와 평생에 걸쳐 귀족의 삶을 숭배하였고 결국 귀족과의 결혼에 이르기 위하여 제 생애의 마지막 힘을 쏟아낸 발자크의 삶이야말로 거대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으며, 그 드라마 창조를 자신의 마지막 작업으로 삼은 츠바이크라는 연출가가 있었기에 우리가 그 드라마를 이렇게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 안인희 역 /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Honoré de Balzac) / 푸른숲 / 691쪽 / 1998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