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역사적 감정의 혹은 역사적 인물의 감정 기복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차분한

by 우주에부는바람

계속되는 츠바이크 읽기... 이번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이다. 아마도 1789년 프랑스 대혁명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해서 네이버에 프랑스 대혁명으로 검색을 하니, 그 연관 검색어 가장 첫 단어로 역시 마리 앙투아네트가 뜬다.) 왕정의 몰락과 시민 계급의 등장이라는, 봉건과 현대의 갈림길이기도 한 이 역사적 사건, 그 한복판에 서 있었던 여왕 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만큼 솔깃한 인물이다.


오스트리아의 여제라고 불리우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린 시절 이미 정략적으로 프랑스 루이 15세의 손자이며 왕위 게승자인 루이 16세의 신부로 간택이 된다. 그리고 곧 까다로운 궁중의 예법에 잔뜩 얽매인 채 우유부단하기 이를데 없는 (더불어 성적으로도 무능하였던) 루이 16세에 비해 자유분방한 동시에 화려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궁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루이 16세가 왕의 지위에 오르기 전에도 그 후에도 그녀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장 무서워했던 것은 바로 지루함이었다. 그녀는 밤이면 궁을 빠져나가 파리에서 오페라를 즐겼고 트리아농에 실제와 똑같은 농장을 꾸며 놓고 홀로 작은 자연을 만끽하였다. 하지만 자신을 즐거워하도록 만드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심하였다. 그녀는 스스로를 몇 개의 궁에 옭아맸고, 그 안에서만 최고의 쾌락을 누릴 수 있다고 여겼다.


“... 그녀의 무감각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도를 보면 된다. 프랑스 지도를 펴놓고 그녀가 20년 동안 지배해온 좁은 행동반경을 표시해보면 그 결과에 스스로 아연해질 것이다. 그 범위가 워낙 좁아서 보통 지도에는 겨우 조그만 점 하나로밖에 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베르사유, 트리아농, 말리, 퐁텐블로, 생클루, 랑부예, 이 여섯 개 성 속에서 빙빙 돌았다... 공간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 한 번도 이 오각형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악마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악마, 쾌락이라는 악마가 그녀를 그 안에 가두어둔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였던 아니 아예 관심조차 없었던 이 왕비가 위의 저 협소한 공간들에서 희희낙락하는 동안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지적인 시민계급은 자신들의 권리에 눈뜨기 시작했고, 미국의 독립 전쟁에 참가하였던 사람들이 돌아왔으며 프랑스와 경쟁 관계에 있었던 영국의 변화된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깨우친 시민 계급의 사람들, 그리고 이들 계급의 변화에 동참한 귀족들과 향후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성장하게 될 민중에 의해 프랑스 혁명이라는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정점에 도달하였다.


“1,000년 역사의 프랑스에서 1789년 여름보다 더 빨리 씨앗이 자란 해는 없었다. 곡물은 하늘 높이 쑥쑥 자라났다. 그러나 일단 피가 거름이 된 혁명의 씨앗은 더 빠른 속도로 자라났다. 수십 년 간에 걸친 태만과 수백 년간의 불의는 단 한 자루의 펜으로 단숨에 타파되었고, 왕실에 의해서 프랑스 백성의 권리가 감금되어왔던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바스티유가 드디어 무너졌다.”


하지만 방황하는 탕아로서 우아한 시간을 보냈던 마리 앙투아네트, 무능한 남편인 프랑스의 왕을 몰아붙이며 자신의 허영을 충족시켜야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혁명 이후 수세에 몰린 뒤에야 가까스로 왕비의 위엄을 갖추기 시작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유일한 연인 페르센과 자신의 아이들을 향하여 마지막 남은 애정을 쏟아부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끝끝내 혁명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 최초의 순간에서 최후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을 단지 인간의 가장 비열하고 저속한 본능에 의해서 휘저어진 더러운 수렁이라고만 생각했다. 자기의 왕권만을 이해하고 주장하려고 했기 때문에 혁명의 역사적인 권리나 건설적인 의지는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남편 루이 16세가 죽은 다음, 자신의 아이들과도 떨어진 채, 몇몇 탈출 시도가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난 후에는 결국 자신에 대한 치열한 방어에도 불구하고 단두대에 올라설 수밖에 없었다. 막강한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의 황녀였고, 그만큼이나 강하였던 또 다른 제국인 프랑스의 왕비였던 그녀였지만 역사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 역사의 흐름을 채찍질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


“... 절대왕정에서 국민의회까지 수백 년이 걸렸고, 국민의회에서 헌법까지 2년, 헌법에서 튈르리 궁전까지는 두세 달이 걸렸지만 튈르리 궁전에거 감옥까지는 불과 사흘이 걸린 셈이다. 이제 단두대까지는 이삼 주일이 남았고, 그 다음에는 한 번만 밀면 관 속으로 들어갈 처지였다.”


역시나 츠바이크의 묘사는 끝까지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마치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올라서던 그 순간에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그의 글을 보는 우리조차 그 현장으로 끌고 들어가는 듯한 묘사는 시종일관 독자들을 압도한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고조에 상관없이 항상 차분한, 그러면서도 사뿐하게 이미지를 영사하는 그의 펜 끝에는 알 수 없는 마력이 있다.


“... 그녀는 그들을 결코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는 이 최후의 시련만 참으면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5분만 지나면 그 다음에는 불멸이 온다는 것을... 그녀는 베르사유의 대리석 계단을 오를 때처럼 굽이 높은 검은색 비단 구두를 신고 날아가는 것처럼 가벼운 걸음걸이로 이 최후의 계단을 올라갔다...”



슈테판 츠바이크 / 박광자, 전영애 역 /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Marie Antoinette) / 청미래 / 552쪽 / 1979, 200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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