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메리 스튜어트》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홀로 고요하고 치밀하게, 한 개인의 연대기 속으로

by 우주에부는바람

“역사적 사건에 대해 그 결과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후세의 관점만 내세우면 잘못 판단하기 쉽다. 실패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부르기는 너무 쉽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위험한 투쟁을 감행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한 개인의 운명이 곧 역사의 운명과 그 궤를 같이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평생을 통하여 경쟁하였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스튜어트, 새로운 종교 세력이었던 개신교에 합류하면서 국민들의 왕으로 재빠르게 변신하였던 엘리자베스와 로마 카톨릭의 수호자이기를 죽는 순간까지 멈추려 하지 않았고 하늘에서 부여한 왕권에 대하여 한치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메리 스튜어트의 엇갈린 운명은 이렇게 오백여년이 흐른 뒤에 들여다보아도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 이 특이한 여인은 개인적인 모욕은 금방 잊어버리곤 했지만, 여왕으로서의 권리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도전도 절대로 잊지 않았다.”


태어난지 6일만에 부왕인 제임스 5세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된 메리 스튜어트로서는 어찌보면 하늘이 부여한 왕권이라는 개념을 피와 뼈로 깊숙이 들이마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여섯 살에 이미 프랑스의 프랑수아 2세와의 결혼을 통해 왕세자비가 되고 그로부터 십년 후에는 프랑스의 왕비이자 스코틀랜드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메리 스튜어트는 프랑수아 2세가 즉위한지 1년여만에 죽고, 다시 스코틀랜드로 돌아오면서 서서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너무 어린 시절 왕국을 떠난 메리 스튜어트를 대신해 왕국을 지배하고 있던 이복 오빠를 비롯해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귀족들, 그리고 이미 개신교와 카톨릭의 격정장이 되어 버린 스코틀랜드, 여기에 항상 자신의 왕으로서의 지위를 위협받아야 했던 (조금 복잡하지만) 자매인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와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이제 홀로서야 하는 여왕 메리 스튜어트에게는 어느 것 하나 거슬리지 않는 것이 없는 힘겨운 싸움일 터였다.


“엘리자베스의 삶에는 세계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보하려는 한 국민의 에너지가 구현되어 나타나 있다. 반면에 메리 스튜어트의 파국에는 화려하고 영웅적으로 죽어가는 기사도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 싸움에서 각자 자신의 의미를 완성했다. 현실주의자인 엘리자베스는 역사에서 승리했고, 낭만주의자인 메리 스튜어트는 문학과 전설로 승리했다.”


여기에 아직 여물지 않은 사랑으로 시작된 우유부단의 절정을 보여주는 헨리 단리와의 두 번째 결혼, (헨리 단리의 죽음과 깊숙이 연관되는) 뒤를 이어 등장한 불꽃같은 사랑의 지배자였던 보스웰 백작 제임스 햅번과의 세 번째 결혼으로의 여정은 결국 이 강인하지만 (사랑에는 약하였던), 역사의 거친 풍랑 속에서 극심하게 피로하였을 (사랑으로의 도피 또한 여의치 않았던) 여왕을 결국 엘리자베스의 정치적 족쇄 안으로 덜컥 떨어뜨리고 만다.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였고 때로는 손을 잡는 것처럼 때로는 서로를 협박하는 것처럼 보였던 두 사람은 결국 메리 스튜어트가 18년이라는 영국에서의 유폐 기간 동안에도 (끊임없는 역사적인 격변의 와중에도) 단 한 차례의 대면을 하지 않았고, 결국 역사는 엘리자베스에게는 자매를 죽음으로 내몬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메리 스튜어트에게는 절대 굴복을 몰랐던 강인한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남기게 된다.


“... 한 작은 사건이 창백한 두려움을 해소시켜 주었다. 형리가 피에 젖은 몸통을 옆방으로 옮기기 위해서 들어올렸다... 그때 무엇인가가 옷 안에서 움직였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가운데 여왕의 작은 애견 한 마리가 몰래 들어와서 두려운 운명의 순간에 그녀의 몸에 꼭 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옷 속에서 여왕의 피로 흥건하게 젖은 채 이제야 뛰쳐 나온 것이다.”


이러한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실을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역시 츠바이크의 묘사이다. 츠바이크는 내내 객관적인 서술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적재 적소에 절묘한 상황 묘사를 삽입함으로써 독자들 또한 마치 그 때 그 시절 그 장소에 삽입하는 마술을 부린다. 역사의 연대기적인 서술을 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자신이 주목한 그 개인의 연대기를 따로 꾸려가는 기술 또한 만만치 않다.


“부(富)는 커지고 엘리자베스 통치 말년에 새로운 예술이 꽃피었다. 여왕은 최악의 행동을 한 뒤에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경탄과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위대한 국가들은 언제나 불의(不義)라는 냉혹한 사각돌 위에 건축된 것이다. 국가의 초석은 피로 반죽된 것이다. 정치에서 잘못이란 패배자의 몫이요, 역사는 단단한 발걸음으로 패배자들을 넘어가 버린다.”


역사의 격랑 속으로 스스럼 없이 걸어 들어가, 그 거친 파고 속에서도 홀로 흔들리지 않는,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심한 멀미를 선사하는 츠바이크의 전기물은 언제나 신통하다. 역사의 현장에라도 있었던 것처럼, 바로 옆에서 메리 스튜어트를 평생 바라보기라도 했던 사람처럼 조목조목 한 인물을 따라가는 치열함이 (그러면서도 너무도 자연스러워 쉽게 읽히는), 곧 역사의 꼬인 매듭을 쉽게 풀어버리는 테크닉이 되는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 안인희 역 /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 (Mary Stwart) / 이마고 / 536쪽 / 200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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