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에라스무스 평전》

유럽의 인문주의자가 가리켰던 역사의 보다 올바른 정신적 방향에 대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2011년 2월 1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츠바이크의 번역물들을 차례로 섭렵하는 중이다. (이번 달 안으로 모두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몇몇 책은 꽤 두꺼워서 장담할 수는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츠바이크의 글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차분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며, 그러면서도 유연한 바람처럼 자연스러운 문체는 우리들로 하여금 몇 백 년의 시간을 훌쩍 건너뛰도록 만드는 마술을 구사한다.


“... 에라스무스는 어느 것에도,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제후와 영주에 대한 부역도, 예배 자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는 내적 독립에 대한 자기 본성의 강요로부터도 자유로와야 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아야 한다... 에라스무스는 실로 독립 광신자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란자나 혁명가는 결코 아니다. 반대로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갈등을 혐오한다. 그는 영리한 전략가로서 이 세상의 권력과 권력자에 대한 모든 불필요한 저항을 기피한다. 그는 그들과 대립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들과 타협한다. 그는 그들을 자기 손에 넣으려고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독립을 택한다...”


이번에도 츠바이크가 시선을 둔 곳은 종교 개혁의 피바람이 거센 유럽이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에서 카스텔리오가 칼뱅에 맞섰다면, <에라스무스>에서는 에라스무스가 루터에게 맞선다. (실은 <에라스무스>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보다 2년 먼저 씌어졌다. ) 물론 카스텔리오가 신교를 비판하되 구교의 편을 들지 않았듯, 에라스무스 또한 루터에게 적대적이었다고 해서 카톨릭의 수호가 목적은 아니었다.


“... 두 사람은 교회가 겉으로 번성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내적으로는 몰락해가는, 존립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똑같은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에라스무스가 천천히 진전을 보이는 치료 방법, 이성과 조소의 주사를 통해 조심스럽게, 점차적으로 피를 맑게 바꾸는 과정을 제안하는 반면, 루터는 피가 낭자한 수술을 한다. 피를 두려워하는 에라스무스는 그런 식의 피비린내 나는 방법, 자기에겐 거부감을 주는 모든 폭력적인 것을 거부해야 했다.”


신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수도원에서 길러졌고 카톨릭 사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호기심 가득한 최초의 인문주의자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었다. 그는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등 당시 가장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유럽의 나라들을 여행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대학들에서 수학하였고 유명한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인문주의자적 기질을 만들어갔다.


“권력의 그늘 아래서도 모든 책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영향을 주고 조용한 방에서 좋은 책을 읽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의 글을 쓰는 것, 어느 누구의 지배자도, 어느 누구의 하인도 되지 않는 것, 이것이 에라스무스 본래의 인생목표였다...”


그러다가 <격언집>과 <바보 예찬> 등 몇 권의 책들이 관심을 받으면서 에라스무스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는 루터의 신교측과 카톨릭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지만, 결국 자신의 양심이 가리키는 바에 따라서만 움직일뿐 어느 한 쪽으로 자신의 학자적 저울이 기울어지는 것을 끝까지 참았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러한 중립을 끝까지 지켜냄으로써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의 이상향을 미흡하나마 실현시킬 수 있었다.


“시대 정신은 언제나 자기 고유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한 인물을 전범으로 선택한다... 새로운 감정과 사상은 언제나 어떤 특별한 집단에만 이해 가능한 것이며, 대중은 그것을 추상적 형태로는 결코 파악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로지 감각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형태로만 파악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념의 자리에 자기들이 두터운 믿음으로 모방하고자 하는 인물, 형상, 견본을 즐겨 세운다. 이러한 시대의 바람은 잠깐 동안 에라스무스에게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보편 인간 (uomo universale), 공평한 사람, 박식한 사람, 자유롭게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 새로운 세대의 이상형이 됐기 때문이다...”


현대와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는 혼란의 시대, 종교와 민족과 인종과 혈통이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대립으로 치닫던 시대에 에라스무스는 자유로운 학문적 교류를 통한 평화를 주창했다. 그는 카톨릭 교회의 부패를 적시하면서도 동시에 개신교가 믿어 의심치 않은 호전적인 개혁에는 결코 찬서할 수가 없었다. 평화를 지향하는 그는 결국 시대의 격류 속으로 휩쓸렸지만 그렇다고해서 그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 에라스무스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모든 나라의 정신적인 사람들과 교양 있는 사람들이 서로 절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생각의 대립, 민족․ 인종․ 계급의 대립을 격한 파벌성으로 강화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흔들림 없이 인간성과 정당성의 순수한 영역을 고수해야만 한다...“


사실 츠바이크는 역사적 승자 보다는 패자에게 더욱 감정을 이입한다. 츠바이크는 외면적 강인함으로 무장한 승자가 아니라 그 유약함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 끝끝내 굴하지 않았던 (일시적인) 패자에게 더욱 자신의 곁을 내어준다. (츠바이크 자신, 나치의 광신에 떠밀려 세계를 떠돌았고, 결국 나치에 의한 세계 몰락을 두려워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역사를 채찍질 한 것은 그 강인한 승자들일 수 있겠으나, 그 역사가 도달할 지점을 미리 짐작하고 예측한 것은 패한 것으로 비춰진 자들의 정신이라는 사실을 츠바이크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분명한 정신, 순수한 도덕의 힘으로 생각하고 말한 것은 그 어느 것도 헛되지 않다. 힘없는 손으로 이뤄지고 완벽한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도덕의 정신을 항상 새롭게 형성하도록 자극한다. 인류애의 사상이, 즉 인간을 더 사랑하고 더 정신적이 돼야 하며 더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인류의 가장 숭고한 과제라는, 소박하지만 동시에 영원한 그 사상이 글을 통해서 세상에 들어가 수 있도록 길을 놓아준 것은 현세의 공간에서 패배한 에라스무스의 명예로 남을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 정민영 역 /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종교의 광기에 맞서 싸운 인문주의자 (Triumph und Tragik des Erasmus von Rotterdam) / 아롬미디어 / 255쪽 / 2006, 2010 (1934)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슈테판 츠바이크 《메리 스튜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