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02. 2024

슈테판 츠바이크 《체스 이야기 · 낯선 여인의 편지》

손에 잡힐 듯 휘몰아치는 작중 인물들의 짐작 불가능한 심리적 상황들...

  츠바이크의 책들을 잔뜩 사들인 아내덕에 츠바이크의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는 체스 이야기와 낯선 여인의 편지를 다시 읽는다. 오래전의 인물들, 바로 그 인물들이 살았던 역사적인 순간들, 바로 그 순간들 그 인물들의 심리를 마치 옆에서 보고 있는 듯 낯설지 않게 서술하는 뛰어난 능력을 지는 작가는 소설에서도 그 등장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데 있어 일가견이 있다.


  「체스 이야기」.

  누군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을 권해달라 치면 가장 먼저 권하는 소설이다. 체스 세계 챔피언인 마르코 첸토비치와 같은 배에 우연히 타게 된 B박사의 체스 대결을 그리고 있는 소설은 매우 흥미롭다. 


  “... 어떤 아이들이라도 기본 규칙을 배울 수 있고, 체스에 서투른 사람이라도 누구나 자신을 게임에서 시험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불변하는 좁은 사각형 안에서 특별한 종류의 대가, 즉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체스에만 적합한 재능을 지는 특별한 재능을 지닌 특별한 천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사실 체스 세계 챔피언인 마르코 첸토비치는 평범한 여느 챔피언들과는 다르다. 그는 시골의 무지랭이에 바보 소리를 듣고 있으며 자신이 둔 체스를 다시 복기할 능력 조차 다. 전무한 교양에 돈을 무지하게 밝히는 그이지만 체스를 두는데 있어서는 천재적이다. 이런 그와 같은 배에 타게 된 나는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를 체스판으로 끌어들이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에게 철저하게 깨지고 있던 어느 순간 무심코 그들의 체스판에 B박사가 끼어든다. 그리고 나와 동료들은 첫 번째 무승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첫눈에 실망했고 심지어 격한 분노마저 치밀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빼내와서 뜨겁게 달아오른 기대감으로 아껴둔 그 책이 백오십 편의 챔피언 시합을 모아둔 체스 교습서였던 겁니다...”


  나는 이제 마르코 첸토비치와의 무승부를 이끌어낸 B박사를 다시금 체스판 앞으로 끌어내기 위하여 그를 방문한다. 그리고 B박사에게서 체스와 관련된 긴 이야기를 듣게 된다. 호텔 밀실에 갇힌 B박사가 읽을 수 있었던 유일한 책이 체스교습서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긴 유폐의 시간 동안 체스교습서를 읽고 또 읽었으며 급기야 홀로 두 사람이 되어 체스를 두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드디어 두 사람의 체스 대결을 성사시킨다. 그리하여 결과는...


  「낯선 여인의 편지」.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는 유명 소설가 R. 그 편지에는 자식의 죽음에 애통해하는 한 여인, 그리고 곧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로 작정한 여인, 그리고 그 평생에 걸쳐 한 남자를 사랑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 한편으로는 밝고 세상을 향한 열린 면을 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 혼자만 알고 있는 아주 어두운 면을 보이지요. 이 깊고 깊은 양면성, 이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존재의 신비입니다. 이것을 제가, 열세 살짜리 여자애가 첫눈에 알아보고 마법같이 끌렸습니다.”


  이 여인은 열세 살, 빈민가 한 귀퉁이에 있는 자신의 앞집에 작업실을 만들고 들어선 이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소녀의 사랑은 시작된다. 말 한 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지만 소녀는 열렬히 그를 사랑했고, 그렇게 삼년이 흐른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의 재혼과 함께 소녀는 이 남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그 집을 떠나게 된다.


  “... 전 당신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습관, 당신의 넥타이, 당신의 양복을 다 알고, 당신의 지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구별할 수도 있었으며, 누가 내 마음에 들고 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도 나누었지요. 열세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매 순간 당신 속에 살았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열아홉이 되어 다시금 그 남자가 살고 있는 도시로 돌아온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남자의 손에 이끌려 그토록 자신이 들어가보고 싶었던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관계를 갖고, 그 남자는 다시금 떠난다. 한 번의 관계에 잉태를 한 여자는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기르기 위해 남자들을 만난다. 그렇게 남자들과 드나들던 클럽에서 여자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그 남자를 만나지만, 그 남자는 그 마지막 만남에서도 그녀를 그 전의 모습, 열세 살 소녀의 모습, 혹은 열아홉 살 처녀의 모습으로 재생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다시 떠난다. 


  “제가 사랑했던 남자도 늘 떠났습니다...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요, 떠난 사람은 돌아오겠지요. 하지만 모든 것을 잊는답니다.”


  물론 그녀의 편지 속의 그 남자는 바로 이 편지를 받은 유명 소설가 R이고 그녀가 얼마전에 잃은 아이는 R의 아들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 김연수 역 /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 (Schachnovelle․ Breif einer Unbekannten) / 문학동네 / 163쪽 / 2010 (1941) 

매거진의 이전글 윌리엄 트레버 《펠리시아의 여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