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 벌린 《청소부 매뉴얼》

다종다양의 얇은 소설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면 그건 바로...

by 우주에부는바람

“루시아 벌린의 인생은 다채로우며 작은 사건이 많다. 여기에서 나온 소재는 흥미진진하고 극적이고 광범위하다. 그녀가 유년기와 청춘기에 가족과 함께 살던 곳들은 아버지가 처한 상황에 좌우되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여러 고장을 전전했다.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와서도 계속 그의 직장을 따라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며 살았다. 루시아 벌린은 알래스카에서 태어나 미국 서부의 광산촌들을 떠돌며 자랐고, 아버지가 멀리 가고 없는 동안에는 엘패소에 있는 외가에서 살았다. 그다음엔 칠레로 이사를 갔는데, 그곳에서는 예전과 다른 풍부하고 특권적인 생활을 누렸다. 이때의 경험은 산티아고에서 보낸 사춘기, 천주교 재단 학교, 정치적 격동기, 요트 클럽, 재봉사, 빈민가, 혁명 등을 그린 단편에 담겨 있다. 성인이 되어서는 멕시코와 애리조나, 뉴멕시코, 뉴욕시를 전전하며 생활했다. 지리적으로 불안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네 아들 중 한 명은 자기가 어렸을 때는 아홉 달마다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녀는 나중에 콜로라도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말년에는 아들들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갔다.” (pp.615~616, 리디아 데이비스의 <후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 중)


루시아 벌린의 소설이 두 권 번역되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그중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청소부 매뉴얼>이 낫겠다. 문학적으로 낫다는 말은 아니다. 평생 76편의 소설을 발표했을 뿐이니 두 소설집의 소설들에 우위를 두어 나누는 것은 무리다. 그저 작가 자신의 투영이라는 측면에서 《청소부 매뉴얼》에 실린 소설들이 좀 더 집요해 보인다. 병에 걸린 누이와의 이야기는 몇 편에 걸쳐 계속되기도 한다.


“작가들은 대부분 그들이 실생활에서 보는 사물과 풍경을 글에 끌어들인다. 가령 나의 헨리에타는 매일 밤 파란 깔개에 접시를 놓고 정교하고 묵직한 이탈리아제 스테인레스 식기 세트로 적은 양의 빈약한 저녁 식사를 먹는다. 쿠폰을 오려서 키친타월을 사는 여자가 그런 식기 세트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이상한 세부 묘사로 생각될지 몰라도 독자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적어도 그러기를 나는 바란다.

이에 대해서 나는 어떤 해명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도 그런 우아한 식기 세트로 식사를 한다. 작년에 나는 현대미술과 크리스마스 카탈로그를 보고 포크와 나이프, 수저 등 식기 세트 여섯 벌을 주문했다. 100달러나 되는 굉장히 비싼 식기였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때는 접시가 여섯 개 있고 의자도 여섯 개 있으니까 그것만 있으면 저녁 파티를 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여섯 개에 100달러였다. 포크 두 개, 나이프 두 개, 스푼 두 개. 여섯 벌이 아니라 여섯 개짜리 한 벌이었던 것이다. 나는 반품하기가 창피해서 내년에 한 벌 더 사면 되지 뭐, 하고 말았다.” (p.85, <관점> 중)


루시아 벌린은 살아 생전에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 못했고, 평생 따라다닌 병이 있었으며, 세 번의 결혼 끝에 네 명의 아이가 있었지만 마지막 결혼도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러니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이야기의 면면 또한 우울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작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군데군데 드러나는 유머 때문이다. 작가가 구사하는 유머에서는 어떤 근성이 느껴진다.


“나는 쉬는 시간에 카페테레아에 가지 않고 4층 테라스로 나갔다. 가로등이 자두나무를 밝혔다. 1월의 추운 밤인데도 자두나무에 꽃이 피었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캘리포니아의 계절을 미묘하다는 말로 자랑한다. 누가 미묘한 봄을 원한다고? 켄트슈리브와 함께 납작하게 만든 판지상자를 타고 진흙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던 옛날 아이다호의 해빙기를 달라. 폭발적으로 피어나는 야한 라일락과 겨울을 이겨낸 히야신스를 달라.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웠다. 차가운 철제 의자가 내 허벅지에 줄무늬를 새겼다. 나는 사랑이 그리웠고 맑은 겨울밤에 속삭이던 옛날이 그리웠다.” (p.161, <잃어버린 시간> 중)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포인트는 각종의 딴소리를 하면서도 결국엔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로 넘어가는 근성의 서술 방식이다. 테라스로 나갔더니 자두나무가 있고, 그 자두나무에서 계절을 느껴 옛날을 떠올리다가 담배를 피우다가 차가운 의자가 남긴 자국을 바라보다가 다시 그리운 옛날로 문장을 이어가는 방식이 재미있다. 온전한 집중이 아니라 산만한 가운데에서의 집중이라 그렇다.


“나는 보통은 늙어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어떤 것들을 보면 아픔을 느낀다. 가령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머리를 휘날리며 긴 다리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그들은 얼마나 자유로워 보이는지. 또 어떤 것들은 나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다. 샌프란시스코 고속철도 문이 그렇다. 열차가 정지하고도 한참 기다려야 문이 열린다. 아주 오린 시간은 아니지만 너무 길다. 시간이 없는데.” (p.164, <카르페디엠> 중)


작가는 평생 지리적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소부, 응급실 간호사, 병원 사무원, 병원 전화 교환수, 선생”이라는 직업을 거쳤고, “곤경에 빠진 어린이, 어렸을 때 겪은 추행, 열광적인 연애,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고치기 힘든 병, 장애, 형제와의 예기치 못한 유대감, 따분한 직장, 까다로운 직장 동료, 요구가 많은 직장 상사, 속이기 잘하는 친구...”라는 캐릭터로 혹은 그런 캐릭터들과 생활했다.


“누군가 죽으면 시간이 멈춘다. 물론 죽은 자에게는 그렇다, 어쩌면. 하지만 애도하는 자에게는 시간이 행패를 부린다. 죽음은 너무 빨리 찾아온다. 계절을 잊고, 해가 길어지고 짧아지는 것을 잊고, 달을 잊는다. 죽음은 달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죽음을 겪고 난 뒤의 안 좋은 점은 우리가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때, 그 모든 일과와 그날그날의 특색이 무의미한 거짓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우리를 진정시키고 달래서, 평온하고 무정한 시간 속으로 우리를 다시 들이는 속임수인 것이다.” (p.574, <잠깐만> 중)


책에 실린 다종다양의 얇은 소설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면 그건 아주 많은 부분 작가가 직접 살아낸 삶의 무게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 소설집에는 마흔 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 고루 작가가 몸담고 있는 셈이다. 한꺼번에 읽지 말고 침대 옆에 두어 짬짬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내 그날그날의 삶이 가진 색이나 결에 따라 소설이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루시아 벌린 Lucia Berlin / 공진호 옮김 / 청소부 매뉴얼 (A Manual For Cleaning Women:) / 웅진지식하우스 / 647쪽 / 2019 (1977, 1983, 1988, 1990, 1993,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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