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부끄러움》

사적인 곡절 이후 발견된 자의식이 만들어낸 이후의 궤적까지...

by 우주에부는바람

《부끄러움》은 초기 3부작 이후, 철저하게 자전적인 글쓰기로 일관하고 있는 작가의 1997년 작품이다. 그리고 정확하게는 1952년 6월 15일에 있던 작가의 가족에게 있었던 하나의 일로부터 비롯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건은 작가 자신이 열두 살에 있었던 일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 일을 의미하고, 작가는 몇몇 남자들에게 “내가 열두 살쯤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었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 글, 모든 글은 가장 극적인 것을 포함한 어떤 행위도 정상적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나 보다. 하지만 애인에게 털어놓은 것을 제외하면, 이 장면은 여전히 언어도 영상도 없는 듯한 이미지로 가슴속에 간직되었기 때문에, 이를 묘사하려고 사용한 단어들이 낯설고 무례하기까지 느껴진다. 이것은 남들을 위한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pp.26~27)


물론 그 일이 실제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 작가의 어머니는 죽지 않았고 작가의 아버지도 살인자가 되지 않았다. 그 일은 그 일 이후에 되풀이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난 날의 여러 상황을 재구성하려는 나의 시도, 꾸밈을 통하지 않고 그 날의 일을 고스란히 길어 올리고자 하는 나의 시도는 그 자체로 작가의 글쓰기 형식과 내용을 결정하는 하나의 결정체가 되었다는 측면이 있다.


“당연히 현실을 추적하는 대신 현실을 생산하고자 하는 옛날이야기는 꾸며내지 말 것. 추억 속의 이미지를 거론하여 번역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이미지를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는 자료로 취급할 것.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 (pp.47~48)


작가의 글쓰기를 결정지은 하나의 결정적인 장면으로 포착되었다는 측면이 이 소설의 한 축이라면 다른 축은 부모 사이에 그러한 일이 벌어질 법한 작가의 가족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관련되어 있다. 소도시의 가난한 자영업자를 부모로 두고 있는, 그러나 보다 높은 지위의 부모를 둔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소설 속의 ‘나’는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차이에서 비롯된 ‘부끄러움’에 가닿는다.


“(그해 학교생활을 돌이키다 보니 세례 사진 앞에서 느꼈던 이질감이 줄어들었다. 진지한 얼굴, 굳은 시선, 앞의 사진에서보다는 아마도 덜 쓸쓸해 보이는 미소 같은 것들이, 그 딱딱한 불투명성이 완화되었다. ‘글’은 사진에 대한 설명이며 사진 또한 글의 해설이었다. 나는 사진 속 그녀에게서 진리요 진보이자 완벽함인 세계에서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결코 상상도 하지 않는 능력과 확신을 갖춘 어린 모범생의 모습을 본다.)” (pp.98~99)


작가에게 ‘부끄러움’ 혹은 수치심이라고 불리는 자의식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 전반이 사립학교에서의 학창 생활에 깃들어 있다면, 그 과정의 어떤 한 순간은 학교의 친구들과 자신의 집을 방문했을 때 문을 열고 나온 어머니의 모습에 깃들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날의 그 일,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 사건은 이 모든 일의 전초전이었을 수도 있고, 그 기원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사립학교, 그곳의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부끄러움 속에 편입된 것이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p.117)


옮긴이는 해설을 통해, 작가가 자전적 글쓰기를 선언하고 이를 수행하기 시작한 1980년대가 거대 담론이 힘을 잃기 시작하는 시대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상징 자산과 거기에서 비롯된 생활양식과 일상적 습관을 기준으로 집단을 분석했던 사회학자’인 부르디외가 죽은 후 작가가 기고한 글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소설 속 그 일, 사적인 곡절 이후 작가에게서 발견된 자의식이 작가를 지금의 작가에게로 이끌었다.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 이재룡 역 / 부끄러움 (La Honte) / 비채 / 151쪽 / 2019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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