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루틴'에 따르는 삶의 평온함에 대하
*2018년 1월 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우리 집의 새해맞이는 이런 식이다. 아내와 나는 각자 책을 읽다가 열두 시가 가까워오면 텔레비전을 켠다.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해가 바뀌면 서로에게 덕담을 던진다. 지나간 한 해 애썼다고 토닥이고 돌아온 한 해 건강하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고양이 용이와 고양이 들녘이를 찾아서 한 번씩 안아준다. 아내와 나는 다시 각자 원하는 자리를 찾아 읽던 것을 마저 읽고, 고양이 용이와 고양이 들녘이도 결박이 풀리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자기만의 확고한 일상의 루틴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칸트다. 그는 평생 여행 한 번 안 가고,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할 만큼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칸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규칙적인 생활을 습관화했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정서적인 차원에 연유가 있다. 어떤 나태함도 일상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경계 태세이자 흘러가는 세월을 최대한 끌어안으며 살고 싶은 내가 시간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p.9)
마침 해가 바뀌는 시점에 읽고 있던 책이 《아무튼, 계속》이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모토로” 살아가는 지은이가 자신의 시간을 다루는 방식을 허심탄회하게 밝히고 있는 기록물이다.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의 일상에 어떤 변화를 용납하기 보다는 변화되지 않는 루틴을 최대한 허용하는 것으로 평안을 찾는 유형의 사람인 지은이와 아내의 일상의 윤곽이 묘하게 겹친다고 여겨졌다.
“살면서 정신력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지만, 대부분 그릇된 가르침이다. 정신과 육체는 분리할 수 있는 이원적 개념이 아니다. 무엇보다 거꾸로 됐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력은 십중팔구 흔들린다. 일상의 항상성도 마찬가지다.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따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일종의 집념은 오래가지 못한다. 대신 외모부터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른 느낌이 들지 않도록 일상성을 갖추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봤을 때 어제 봤는지 며칠 전에 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도록 낮은 존재감을 체화하는 것이 항상성을 지속시키는 근원이라 할 수 있다.” (pp.34~35)
‘일상의 항상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아내도 빠지지 않는다. 아내는 오랜 회사 생활 동안 지각을 허용치 않았다. 주중의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깨어나는 시간, 토요일의 취침 시간과 일요일의 기상 시간이 정해져 있고 약간의 오차만 허용된다. (하지만 이렇게 적고 보니 현대인의 대부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항상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항상성 높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루틴이다. 자기만의 루틴을 마련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지키고 가꾸겠다는 다짐이다. 살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유혹에 노출되고 휩쓸린다. 바빠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실연을 해서, 기분 좋은 일이 생겨서, 심지어 배고파서인 경우도 많다. 그런데 루틴은 일종의 일상 지킴이랄까, 온갖 사정과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빚어내는 예외의 유혹이 피어날 틈을 주지 않는 터프한 보안관이다... 일상 루틴의 제1조항은 정해진 루틴에 의문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고, 제2조항은 예외 없음이다. 어떤 상황, 어떤 사정, 어떤 감정의 돌발 변수에도 흔들림 없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정언명령과도 같다...” (p.39)
아내의 대부분의 일상은 정해진 ‘루틴’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한다. 집에 들어오면 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주중의 요일에는 밥을 안치고, 고양이 용이의 약을 만든다. 그사이 나는 고양이의 화장실을 청소한다. 고양이 용이에게 약을 투여한 다음 아내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그사이 나는 청소기를 돌린다. 아내가 조금 늦게 귀가하는 화요일에는 고양이 용이에게 먼저 약을 먹이고, 그 다음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나는 성장과 변화와 발전에서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 모든 순간들이 조금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한다. 어딘가에서 나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켜켜이 쌓아두고 언제든 되돌아왔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반겨주는 존재가 있길 늘 바란다. 그래서 시간을 버텨내온 단단한 것들에 흥미를 느끼고 안정을 얻는다. 좋아하는 것들은 주로 오랜 시간 고집스럽게 살아남은 회사의 것들이고, 집을 고를 때도 기왕이면 낡은 집을 고른다(형편도 어렵고 하니).” (p.163)
오래전 내게는 절대 정해진 루틴에 따르지 않는다, 는 루틴의 법칙 같은 것이 있었다. 새로운 것에 현혹되는 편은 아니지만 익숙해지면 서둘러 거리를 두려 한 적도 있었다. 아내의 루틴에 따라 저절로 형성되는 나의 루틴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전은 아니다. 어쨌든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볼 작정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책읽기라는 오래된 메인 ‘루틴’만큼은 유지에 별 동력이 필요치 않다.
김교석 / 아무튼, 계속 / 위고 / 167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