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속에서 모호하게 해리/해리엇 버든의 한 생애를 읽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망설여진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소설 《불타는 세계》를 두 명 정도에게 권했다. 한 사람은 까페 여름의 형인데, 그가 미학을 공부했고(그 정도의 공부가 이 소설을 읽는데 필요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소용이 없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여전히 읽으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 책의 탐독을(이 소설이 머리에 쥐가 나게 만든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물론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같은 소설과 비교해본다면 말이다) 게을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 명은 까페 여름에서 만나는 후배로, 어디 한 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머리에 쥐도 나고, 위키백과 뒤지느라 손가락에 쥐도 나봐라, 하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소설은 해리엇 버든, 이라는 인물에 대한 출판 편집자 헤스가 수집한 기록들 중 일부를 쭈욱 나열한 결과물이다. 헤스는 어느 날 <오픈 아이>라는 잡지에 투고된 리처드 브릭먼의 글, 그가 그 글에서 인용한 어떤 문장을 접한 후, 그 인용문의 원작자인 해리엇 버든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미 사망한 해리엇 버든의 자식을 통해 그녀가 남긴 공책을 얻게 되고, 이를 토대로 하여 이처럼 방대한 책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소설 《불타는 세계》는 헤스에 의해 주도된 해리엇 버든 연구서이다.
“... 나는 사상과 예술의 대화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버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버든의 공책들은 모두 대화의 형식들로 읽을 수 있다. 그녀는 꾸준히 일인칭에서 이인칭으로, 또 삼인칭으로 변위한다. 어떤 대목들은 자아의 두 버전이 서로 논쟁을 펼치는 것처럼 쓰여 있다. 한 화자가 진술을 한다. 다른 화자가 반박을 한다. 공책들은 상충되는 분노와 분열된 지성이 지면에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전장이 되었다.” (p.23, 편집자 헤스의 서문 중)
해리엇 버든은 해리엇 버든 이전에는 해리 로드였다. 그녀의 남편은 뉴욕의 유명한 미술품 중개상인 펠릭스 로드였다. 그녀는 180cm가 넘는 큰 키에 덩치가 꽤 컸고, 남편과는 나이차가 꽤 있다. 그녀와 남편 사이에 딸 메이지 로드와 아들 이선 로드가 태어났다. 남편 탓에 그녀는 미술계와 가까웠고 그녀의 집에서 파티를 열기도 했으며, 여러 미술계의 파티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펠릭스 로드의 아내이자 동시에 예술가였지만 예술가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어느 날 펠릭스 로드가 죽었다.
“모든 부류의 비평가들은 자기가 예술작품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아리송하거나 위협을 느끼면 마구 깎아내릴 가능성이 높다. 지식인이 아닌 예술가들도 많지만 버든은 지식인이었고, 작품에도 광범한 학식이 반영되었다. 그녀의 인용은 많은 분야들을 아울렀고 추적하기 불가능한 경우도 잦았다. 또한 그녀의 예술에는 문학적이고 서사적인 자질이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느꼈다. 그녀의 방대한 지식만으로도 일부 평자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짜증스럽게 느껴졌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성의 문제가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미술계에서 자리를 잡는 데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p.116~117, 평론가 로즈메리 러너의 서면진술 중)
남편이 죽은 후 헤리엇 버든은 집을 떠나 브루클린의 레드훅, 이라는 동네에 건물을 한 채 사서 그곳에 기거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곳에 이상한 사람들을 거두고, 자신이 작업을 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그곳에서 가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유명한 미술품 수집가의 아내였고 나이 든 여성인 해리/해리엇 버든의 얼굴 위에 앤턴 티시, 피니어스 Q. 엘드리지 그리고 룬이라는 세 명의 가면을 차례로 쓴다. 그렇게 거대한 프로젝트, 자신만의 예술 활동을 하게 된다.
『편지에서 해리엇 버든은 뉴욕 시에서 열린 세 번의 개인전에 등장한 작품들을 자신이 창작했다고 주장합니다. 앤턴 티시의 <서양 미술의 역사>, 피니어스 Q. 엘드리지의 <질식의 방들>, 그리고 좀더 최근작으로 룬이라고 알려진 작가의 <저변>이니다. 그녀가 표명한 동기는 단순합니다. “나는 각 가면의 페르손에 따라 내 예술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과거에 그녀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을 때는 거의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세 사람의 ‘살아 있는 남자의 가면’을 쓰고 가명으로 전시한 작품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개인과 대중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버든은 이를 ‘남성 증폭 효과’라고 부르며,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 관객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를 영리하게 덧붙입니다.“ (p.404, 리처드 브릭먼의 <오픈 아이: 예술과 인지 연구의 융합학문 저널> 독자 투고, 2003년 가을호 중)
우리는 이러한 해리엇 버든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과 여러 경로를 통하여 듣는다. 그중 가장 중요하지만 난해하기 그지 없는 해리엇 버든이 남긴 공책들이 전하는 목소리일 수 있다. 해리엇 버든은 알파벳 대문자를 제목으로 하는 여러 권의 공책을 남겼고, 그 공책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편집자 헤스조차 그 공책들을 일관성 있게 정리할 수는 없었다.
“... 그녀를 나의 <생각하는 여인상>으로 만들어 17세기의 괴물, 즉 여성 지식인이었던 뉴캐슬 공작부인 마거릿 캐번디시를 기리게 해야겠다. 그녀는 희곡, 로맨스, 시, 서한, 자연철학, 유토피아 픽션 《불타는 세계》를 썼다. 나는 내 여인을 공작부인에게서 따와 <불타는 세계>라 이름붙일 것이다...” (p.335~336, 해리엇 버든의 공책 M 중)
공책의 일부에는 날짜가 적혀있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공책에 붙어 있는 알파벳도 어떤 순서를 따르기 보다는 해리엇 버든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어떤 분류에 따랐다. 해리엇 버든의 공책 M(과 N)은 그렇게 뉴캐슬의 공작 부인이었던 마거릿 캐번디시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으면서 동시에 데카르트, 홉스, 모어와 가상디와 같은 인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식이다.
“... 해리는 이런 기만의 게임을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라고 고집스럽게 우겼다. 단순히 날렵한 손재주로 부리는 얄팍한 마술이 아니라고, 이 마술은 서서히 전개되고 결국은 훨씬 더 고차원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우화로 변해서 이야기되고 또 이야기될 거라고 말했다. 아직 결정하지 않은 어떤 순간에, 그늘에서 성큼성큼 나와 정체를 폭로하고 ‘그들 모두’에게 치욕을 안겨주겠다고.” (p.174, 레이철의 서면진술 중)
이러한 해리엇 버든의 공책과 함께 책에 실린 또다른 한 부류의 글들은 그녀와 가까운 사람들의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의 아들과 딸, 그리고 가장 가까운 그리고 거의 유일한 것처럼 보이는 친구 레이철이 작성한 것들이다. 레이철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해리엇 버든의 민낯, 좀더 이해하기 쉬운 해리엇 버든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미술계를 향한 그녀의 회심의 일격, 동시에 남편을 향한 혹은 아버지를 향한 혹은 남자를 향한 것일 수도 있는 일격을 꿈꾸었던 그녀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복수심은 무기력함의 고통에서 생겨난다. ‘나는 괴롭다’가 ‘너 역시 괴로울 것이다’로 바뀐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복수심은 활력을 불어넣는다. 초점과 생명을 주고 감정을 외부로 돌려 비탄을 짓이겨 뭉갠다. 비탄 속에서 우리는 산산조각난다. 복수 속에서 우리는 단단히 하나로 뭉쳐 목표를 겨냥하는 하나의 뾰족한 무기로 화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아무리 파괴적이더라도, 복수심은 한동안 유용한 목적이 될 수 있다.” (p.187, 레이철의 서면진술 중)
해리엇 버든의 공책, 해리와 가까운 이들의 진술과 함께 중요하게 여겨지는 또 한 부류의 진술은 그녀의 가면 역할을 해주었던 인물들의 진술이다. 초짜 예술가였던 앤턴 티시 (그는 인기를 끌었지만 결국 그녀의 가면을 이기지 못하여 미국을 떠난다), 태생적 비주류였던 피니어스 Q. 엘드리지 (그는 해리엇 버든과 가장 마음이 잘 맞았다), 그리고 룬이 (그는 세 명 중 유일하게 해리엇 버든과의 공동작업을 나중에 부정하였다. 그리고 자살하였다. 그래서 책에는 룬의 전기를 쓴 비평가와 룬의 여동생이 대신 등장한다.) 그들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자기 본인으로서 말할 때 가장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된다. 그에게 가면을 주어보라. 그러면 진실을 말할 것이다.” 나는 잠시 해리엇 버든의 가면을 연기했고 단 한순간도 그걸 후회하지 않는다. 근시안적인 혼혈 동성애자라는 나의 자아 뒤에서 그녀는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 (p.190, 피니어스 Q. 엘드리지의 서면 진술 중)
이외에도 몇몇 인물들의 서면 진술 혹은 녹취록 편집본 그리고 해리엇 버든의 글이 다른 이름으로 작성한 글이 더 등장한다. 소설은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액자 소설이 아니라 소설 속의 수많은 액자, 라는 액자 소설이 되고 있다. 이 여러 개의 액자들은 짜맞추는 일은 힘겹지만 그만큼 즐겁기도 하다. 그 액자들은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비어 있어서 더욱 그렇다.
“... 미술계는 해리의 실험실이었다 - 인간의 상호작용을 축소한 소우주였다. 그 속에서 입소문과 뜬소문은 말 그대로 회화와 조각의 외양을 바꿔놓는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의 미술작품이 다른 것보다 진정 우월하다거나 미술 시장이 대체로 그런 눈먼 생각들에 의해 돌아간다는 걸 입증할 수는 없다. 해리가 거듭 내게 지적한 바와 같이, 예술의 개념에 대해서조차 합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p.377, 레이철 브리프먼의 서면 진술 중)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설의 골자는 뉴욕 예술계를 풍자하기 위하여 해리엇 버든이 사용하는 가면 프로젝트라는 일련의 예술 과정일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해리엇 버든의 통쾌한 승리로 끝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드리워졌던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이어지는) 가부장의 그림자는 남성 주류인 사회의 전방면(은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예술이나 과학은 분명한...)에까지 길게 자리한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부분에서 훌륭한 소설임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마지막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해리엇 버든은 전생애를 걸쳐 어떤 가부장제에 대항해 싸워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가 싸운 방식은 모호하였고, 어쩌면 그 모호함이 이 소설을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네 자신을 위해 싸워라, 남들한테 휘둘리지 말고, 내 말 알겠니?”라고 손녀를 향해 말하는 장면은 어색하다. 죽음을 앞둔 해리엇 버든이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말았으면, 뭔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손녀에게 자신의 모호한 생애를 남겼다면 어땠을까...
여하튼, 망설이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제 당신이 시작할 차례이다.
시리 허스트베트 Siri Hustvedt / 김선형 역 / 불타는 세계 (The Blazing World) / 뮤진트리 / 553쪽 / 2016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