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이들의 삶에 때때로 문득 깊숙이 간여하는 저 죽음들...
네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집이다. <환상의 빛>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아직 보지는 못하였다. 까페 여름의 후배 말로는 인상적이다고 한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나머지 세 편까지 합하여 책에 실린 소설들 모두에 죽음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죽음들은 불분명하지만 남은 이들의 삶에 간여하고 있다. 명확하지 않아서 더욱 깊숙이, 때때로 문득...
「환상의 빛」
어린 시절 ‘터널 나가야’라고 불리는 가난한 집성촌에서 살던 나는 지금은 바닷가의 가난한 마을 소소기에 살고 있다. 나는 첫 번째 남편이 죽었고, 재혼을 한 상태이다. 그리고 그 죽은 남편과 때때로 대화를 나눈다. 죽은 남편은 별다른 기색도 없던 어느 날, 선로를 걷다 기차에 치어 사망했다. 자살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가 자살을 한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세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이제 나는 초등학생 딸이 있는 다미오 씨, 그리고 그녀가 낳은 자식인 유이치, 그리고 시아버지와 함께 산다. 여전히 죽은 남편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를 멈추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아간다, 산다... “... 당신을 잃어버린 슬픔은 저 자신조차 몸이 떨릴 정도로 이상한 것으로, 그것은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타인의 억측이 미치지 못하는, 아무런 이유도 발견되지 않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발을 동동 구를 만한 분함과 슬픔이 가슴속에 서리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분함과 슬픔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p.80)
「밤 벚꽃」
남편과 헤어지고 일 년 전에는 외아들 슈이치까지 잃은, 이제 쉰이 되는 아야코는 꽤나 넓은 집에서 혼자 산다. 그 집 마당에는 벚꽃이 한 그루 있다. 외아들이 죽었을 때 아야코의 전남편 유조가 많이 도와줬고, 일주기를 앞두고 유조가 아야코를 다시 찾았다. 이 집은 원래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집이고, 유조가 바람을 피워 헤어졌을 때 시아버지가 유조에게 준 집이다. 아야코는 이 집에 하숙을 쳐볼까 생각 중이었지만 유조의 뜻에 따라 그만두려고 하는 바로 그때, 한 사내가 하룻밤만 이 집에 묵기를 청한다. 아야코는 망설이다 이를 받아들이고, 그날 밤 사내는 한 명의 여자와 함께 이층 방에 묵는다. 두 사람은 오늘 결혼했고, 멀리 가지 못하는 가난한 상황 탓에, 그 방에서 멀리 바다가 보이고 마당의 활짝 핀 벚꽃이 보이는, 그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박쥐」
나는 어린 시절 친구였던, 그러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게 어정쩡한 사이였던 란도가 오 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된다. 란도는 학창시절 불량 그룹의 우두머리였고 나는 모범생 쪽이었지만, 란도는 그런 내게 친밀함을 보였다. 그런 란도가 어느 날 불쑥 내게 동행을 요청해오고, 나는 그를 따라 낯선 동네에 가게 된다. 란도는 그곳에서 한 여자아이를 불러내고 그녀와 함께 제방 너머로 간다. 나는 한동안 란도를 기다리가다 그의 가방을 찢어버린 후 그 자리를 떴다. 란도는 그 후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유부남인 나는 미혼인 요코와 밀애를 즐기는 사이이다. 그녀와 여행을 함께 한 여관에서 그는 요코를 향해 묻는다. “아직, 나하고 헤어질 수는 없겠지?” 요코는 순순히 “...... 응,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한다.
「침대차」
기술자였던 나는 지금은 영업 부서로 배치되어 일한다. 나의 상사로는 고타니라는 남자가 배정되었는데, 그는 영업의 달인으로 명성을 날리던 사람으로 다른 회사로부터 스카웃 된 이이다. 그게 오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어느 회사와의 계약을 위해 기차의 침대칸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그 침대칸 칸막이 너머에 한 노인이 타고 있는데, 나는 새벽녘 그 노인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나는 오래 전 일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나의 집으로 놀라왔던 친구 가쓰노리는 강에 떨어져 죽을 뻔 하였으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십몇 년이 지나 그는 대학 시절 열차에서 떨어져 사망하였다. 나는 그 후 가쓰노리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에 간 적이 있다. 가쓰노리의 할아버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아침이 왔고 침대칸의 커튼을 젖혔고, 노인은 없었다.
미야모토 테루 / 송태욱 역 / 환상의 빛 (幻の光) / 바다출판사 / 169쪽 / 2014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