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의 긴장감으로 구축되는 가족 일대기...
믿기 힘들지만 그래서 일반적이라고 볼 수는 없겠으나,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 누군가를 가족으로 둔 사람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고 나니, 소설 속의 아쿠쓰家,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누나와 남동생으로 구성된 이 가족의 일대기를 서걱거리는 와중에도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었다. 독특한 것을 넘어 짜증이 일기도 하는 이 캐릭터들은, 개과천선의 여지를 남겨두는 우리나라 일일드라마의 일부 캐릭터들을 닮은 것도 같다.
“대체로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화내기 전에 누나가 격노하고 내가 울기 전에 누나가 오열한다. 그러면 나는 왠지 몰게 주저하게 되고 침묵하게 될 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성격의 영향은 남았다. 나는 누군가가 내 ‘감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되면 참을 수 없었다.” (p.56, 1권)
소설을 끌고 나가는 것은 이 가족의 막내인 아유무이다. 소설은 이 아유무가 태어나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극성스럽기 그지없는 누나와의 경쟁을 아예 포기한 탓에 (라기 보다는 나름의 방식으로 경쟁하여 항상 우위를 점한다고 볼 수도 있을) 아유무는 언제나 비교 우위의 자식인 채로 자라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유무의 삶이 마냥 평안한 것은 아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누나도 버겁지만, 그러한 누나와 맞상대하여도 뒤지지 않을 소녀 캐릭터인 엄마도 만만치 않다.
“... 야곱이 말하는 ‘사라바’는 아름다웠다... 마치 ‘안녕’이라는 의미가 아닌 말처럼 들렸다. 빛나는 가능성을 내포한 반짝이는 세 글자로 여겨졌다... 어느덧 나도 야곱을 흉내 내어 ‘사라바’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사라바’는 ‘안녕’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 되었다... ‘사라바’는 우리를 이어주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 (p.257, 1권)
불행이라고 해야 할 지 아니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가족은 이란에서 일본, 다시 이집트로 갔다가 일본으로 돌아오는 등 잦은 외국 생활을 하는 해외 주재원을 아버지로 둔 탓에 계속해서 주변 환경의 변화를 겪는다.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이 떠돌아다니는 삶은 그러나 이집트에서 마무리 된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와 엄마는 헤어진다. 이제 아유무와 다카코는 아쿠쓰라는 아버지의 성대신 이미바시라는 엄마의 성을 쓴다.
“누나는 강고한 의지를 가진 어머니의 자식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한없이 상냥한 아버지의 자식이기도 했다. 사진 찍히는 것을 당연시했고 결코 ‘다음에는 제가 찍을게요’라고는 말하지 않았던 어머니,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사람 모두를 용서하고 바보처럼 원조한 아버지...” (p.175, 2권)
아유무와 다카코는 성장하고, 이혼한 부모 또한 나이가 들어간다. 아유무와 다카코의 주변 인물들도 조금씩 늘어간다. 아유무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중 특히 스구와의 관계를 통하여, 그리고 다카코는 종교 단체를 닮은 사토라카몬사마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야다 아줌마와의 관계를 통하여 세상과의 접점을 넓혀간다. 그 사이 엄마는 여러 남자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아버지는 절로 들어가 승려가 된다.
“...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물보라를 일으키고 크게 넘실거리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 궤적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역시 하얬다. 전 세계의 바다를 떠도는 야다 아줌마의 골분처럼 하얗고 결코 포착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확실히 거기에 있었3다. 누나가 만든 고둥, 어머니가 만든 로스트비프, 아버지가 손에 든 편지, 스구가 사랑한 레코드, 나쓰에 이모가 기도를 올리던 신사, ‘구세주’라고 쓰인 하얀 종잇조각이.” (p.404, 2권)
가족의 일대기이니 만큼 긴 시간 동안 진행되는 소설이 주는 서사의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재미는 다카코라는 캐릭터가 던지는 그리고 다카코와 엄마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에서 비롯된다. 결국 이들 사이의 긴장감은 다른 모든 관계들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결국 모든 삶은 자기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하는 것, 이라는 조금은 빤한 결말에 이르기는 하지만 그러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이들 캐릭터가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렇게 소설은 지탱된다.
니시 가나코 / 송태욱 역 / 사라바 (サラバ!) / 은행나무 / 전2권 (1권 458쪽, 2권 425쪽) / 2916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