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vs 수메르 신화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 '신화'는 어디에서 끝나고, '계시'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걸까?


신화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가장 오래된 방식 중 하나다. 수천 년 전, 문명이 막 꽃피던 시기에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에서 등장한 수메르 신화는 인류 최초의 신화 체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이 이 수메르 신화와 놀랄 만큼 유사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유사성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인류 보편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당연한 닮음일까? 궁금증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대홍수 이야기, 놀라운 평행선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대홍수 신화"다. 구약 성경의 창세기에는 하느님이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해 홍수를 일으키고,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는다.


그런데 이와 거의 동일한 이야기가 수메르 신화, 특히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한다.


수메르의 대홍수 이야기에서는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이라는 인물이 신의 계시를 받아 거대한 배를 만들고, 홍수에서 살아남는다. 동물들을 태우고, 비둘기와 까마귀를 날려 육지를 확인한다는 설정까지도 성경과 흡사하다.


이 두 이야기 사이의 시간 차이는 약 1,000년,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원전 2,100년경에 기록되었고, 성경 창세기의 형성은 대체로 기원전 1,000년경 이후로 본다. 이는 성경의 이야기들이 수메르 신화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둘째, 창조 이야기의 공통된 모티브


수메르 신화와 성경의 또 다른 유사점은 창조 이야기다. 성경은 하느님이 혼돈 속에서 빛과 어둠, 땅과 하늘을 나누고, 인간을 흙으로 빚어 만들었다고 서술한다.


수메르 신화에서도 최초의 인간은 신이 흙(점토)을 빚어 만들어 생명을 부여한 존재다. 인간은 "신의 노역을 대신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설정은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신화의 공통된 주제이자, 성경 속 "인간은 땅을 경작하고 세상을 다스릴 책임을 지닌 존재"라는 개념과도 연결된다.


셋째, 에덴의 원형, '딜문'(Dilmun)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살던 에덴동산은 "생명의 강이 흐르고, 고통과 죽음이 없던 완전한 장소"로 묘사된다.


그런데 수메르 신화에도 이와 유사한 낙원이 존재한다. 바로 딜문이다. 딜문은 질병도, 노화도,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묘사되며, 인간의 타락 이전 상태를 상징한다.


딜문에서 최초의 여성 신 "닌후르사그"가 남성 신과 함께 생명을 창조해 내는 이야기 또한, 성경의 이브와 유사한 역할 구조를 보여준다.


넷째, 유사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이 유사성은 단순한 문화적 영향일까? 아니면 성경 역시 당대의 신화적 전통 속에서 형성된 한 부분에 불과한가?


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성경은 인간의 언어와 문화 속에 계시된 "하느님의 진리"로 해석된다. 그 진리는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해졌으며, 당시의 상징과 틀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수메르 신화와의 유사성은 진리를 전달하는 '그릇'의 유사성이지, 진리 자체의 복제는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반면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성경 역시 인간 집단의 기억과 상상력, 역사적 경험이 축적된 "집단적 신화"로 본다.


신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공동체가 세계를 이해하고 윤리를 적립해 가는 이야기 형식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그 이야기 전통의 정제된 결정체이며, 수메르 신화는 그 시초일 수 있다.


다섯째, 신화와 계시 사이


성경과 수메르 신화의 유사성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믿는 이 이야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신화는 언제 계시로 바뀌는가?", "하늘에서 내린 진리는 어디까지가 인간의 손길인가?"


하지만 이 질문은 신앙을 무너뜨리기보다는, 더 깊은 성찰로 이끈다. 성경은 단지 "진리의 문장"이 아니라, 인간과 신의 만남 기록이며, 그 속에는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갈망과 두려움,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메르 신화와의 유사성은 그것이 허구라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진리를 향한 인류 전체의 집단적 본능을 보여주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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