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우리는 어릴 적부터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다. 배려, 겸손, 양보는 공동체의 미덕으로 가르쳐지고,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착한 사람의 증표처럼 여겨져 왔다.
물론 그런 정신은 사회를 부드럽게 굴러가게 하는 윤활유 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많은 이들이 타인을 배려하다 못해, 자기 자신에게는 무심하고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냉정하고, 때로는 모질기까지 하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한테 미안한 삶"을 살아간다.
한 직장인은 말한다. "몸이 아픈데도 휴가 쓰기가 미안해서 계속 출근했어요. 동료들한테 미안했죠. 그런데 돌아보니, 정작 나한테 너무 미안하 더하 고요."
또 어떤 이는 주말에도 가족을 위해, 회사 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괜찮아"라는 말로 자기의 피로를 덮고,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말로 욕구를 누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나는 나한테 너무 미안한 삶을 살고 있구나.
이 미안함은 흔히 무시되지만, 가볍지 않다. 오랜 시간 쌓인 자기 소외는 결국 무기력과 번아웃, 혹은 관계의 균열로 돌아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를 돌보지 못한 사람은 타인을 진심으로 돌보기 어렵고, 스스로를 아끼지 못한 사람은 결국 사랑을 주는 방식도 왜곡된다. "미안한 삶"은 어느 순간 "고장 난 삶"으로 이어진다.
자기한테 미안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퇴근 후 30분을 온전히 자신에게 쓰는 일, '아니요'라고 말하는 연습, 남들 눈치를 잠시 내려놓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마주하는 일 말이다.
타인을 향하던 예의와 존중을 자신에게도 적용하는 것, 그게 바로 시작이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무언가에 밀려 자신을 뒤로 미뤄두지만, 그 삶의 누적이 결국 자신을 배반하게 만든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물어보자. 나는 나한테 정말 떳떳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나에게 너무 미안해진 건 아닐까?
살면서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는 삶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폐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 미안함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향한 질문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