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이 사라진 시대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요즘 우리는 '사람' 속에 살고 있지만 '인간다움'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이상한 감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스마트폰 화면에 빠져 있고, 대화는 끊긴 지 오래다. 직장에서는 감정보다 성과가 중요하고, 친구 관계에서도 '유용성'이 관계의 지속 여부를 좌우한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우리 삶을 이전보다 훨씬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기술은 인간다움의 자리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밀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인간다움'은 단순히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감정, 태도, 그리고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타인의 눈물을 보고 마음 아파할 수 있고, 비효율을 감수하면서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약자를 돌보고, 자신의 이익을 일부 포기하면서 공동체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AI도, 로봇도, 알고리즘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품성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런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다음은 효율과 최적화가 만든 인간다움의 실종에 관한 내용이다.


오늘날의 삶은 "최적화된 결과"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람과의 관계조차 효율적이어야 하고, 감정도 생산성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만 허용된다.


회의는 짧을수록 좋고, 대화는 목적 중심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마음속 고민보다, 오늘 몇 개의 업무가 끝났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일상은 자동화되고, 사람 간의 접촉은 줄어들며,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과 기호를 대신 결정해 준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점점 "정서적으로 낯선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 사이의 온도는 줄고, 감정의 교류는 피곤한 일이 되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비전문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흐름에 어떻게 맞서야 할까?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실천은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해서,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세 가지 길에 대해 살펴본다.


1. 속도를 늦추고, 깊이를 회복하자

우리는 너무 빨리 판단하고, 너무 빨리 소비하고, 너무 빨리 잊는다. 인간다움은 느림 속에서 자란다.


누군가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 일, 정답 없는 질문을 붙들고 며칠을 고민하는 일, 함께 걷는 산책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일, 그런 느린 순간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2. 기술이 아닌, 관계로 연결되자

'연결'이라는 단어는 디지털 시대에 너무 많이 쓰인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실질적 연결이 아니라 데이터의 흐름일 뿐이다.


인간다움은 기술적 연결이 아닌, 정서적 연결을 필요로 한다. 목적 없이 만나고, 기대 없이 이야기하고, 위로 없이 곁에 있어 주는 관계, 그런 인간관계야말로 기술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공간이다.


3. 잊지 말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자

"나는 지금 인간다운가?" "나는 누군가의 고통에 무감각하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고민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인간다운 행위다. 질문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며, 질문을 통해 우리에는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다음은 "인간다움은 새로운 '저항'이다"는 데 대한 내용이다.


이제 인간답게 산다는 건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시대에 대한 저항이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는 것, 효율보다 의미를 선택하는 것, 이 모든 행동은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며, 동시에 가장 안 인간적인 일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AI는 더 똑똑해질 것이고, 인간의 역할은 더 좁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바로 인간다움 그 자체다.


또,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잃지 않는 한 삶, 바로 그것이 인간다움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인간다운 방법"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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