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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재주"의 위험성

'조조'와 '양수'의 이야기에서 배우는 교훈

'조조'는 후한 말의 난세를 통일로 이끈 전략가이자 정치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있어 출신이나 배경보다 능력을 중시한 인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런 조조도 끝내 참지 못하고 숙청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책사 '양수'다. 양수는 총명하고 문학에도 능했으며, 조조의 아들 '조식'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그의 과도한 재주와 그것을 과시하는 전략적 언행이 끝내 화를 부르게 된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빠른 분석력과 날카로운 통찰은 분명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타인의 심리를 누르고, 공동의 리듬을 망가뜨릴 때, 그 자산은 오히려 독이 된다. 전략은 단지 "이기는 법"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양수의 비극은 재주의 부족이 아니라, 전략적 균형감각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재주는 빛나야 하되, 눈이 부셔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참고했으면 하는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통찰이 위협이 될 때


역사는 우리에게 반복되는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거울을 제공한다. 중국 후한 말기, 난세의 영웅 조조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실용주의적 인재 등용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진궁, 순욱, 곽가, 정욱 등 뛰어난 모사를 가까이 두고, 그들의 조언을 통해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조조가 끝내 자신이 직접 발탁한 책사 양수를 처형한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제거 이상의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양수는 뛰어난 두뇌와 감각, 그리고 빠른 상황 판단력으로 조조에게 인상 깊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재능'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재능을 "너무 빨리,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에 조조의 신뢰를 잃는다.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 "양수는 내 마음을 너무도 잘 안다. 그가 내 앞에서 뽐내는 재주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그를 믿을 수가 없다."


둘째, '활'자 하나에 담긴 권력의 심리


양수의 결정적 실수로 여겨지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조조가 어느 날 군영의 출입문에 '활'자 하나만 써 붙인다.


부하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우왕좌왕했지만, 양수는 곧바로 그 글자를 해석하고 문을 닫게 했다. 그의 해석은 이렇다.


"'활'자는 '문'과 '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말 많은 자들의 출입을 막으라'는 상징적 지시입니다."


양수는 조조가 의도한 상징적 메시지를 단숨에 해석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얼핏 보면 대단한 통찰력의 발현이자 충성심의 표현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조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의중이 너무 빨리 읽힌 데서 위협을 느꼈다. 당시 군영은 전쟁터이자 권력의 축소판이었다.


리더는 언제나 자신만이 통제권을 갖기를 원한다. 그런 리더의 앞에서 부하가 그의 속마음을 '알아서' 행동한다는 건, 단순한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셋째, 재주보다 더 중요한 것: 공감과 조율의 감각


양수의 실패는 그가 뛰어난 두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두뇌를 사용하는 방식에 "전략적 겸손"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리더의 불안을 헤아리는 감각, 타인의 심리를 고려한 자기 절제, 조직 내 권력 구도의 흐름을 따르는 민감함이 부족했다.


현대 조직에서도 유사한 사례는 종종 보인다. 프로젝트 회의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문제를 꿰뚫는 이가 있지만, 그 통찰이 상사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거나, 동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좋은 아이디어도 시기와 방식, 관계의 문맥을 고려하지 않으면 갈등의 씨앗이 된다. 특히 권위자가 주도하는 조직 구조에서는 "너무 앞서가는" 행위가 '이탈'로 간주되기 쉽다.


넷째, 진짜 전략가는 "빛을 아는 자"가 아니라 "그늘도 아는 자"다.


양수는 전략가였다. 그러나 진정한 전략가는 빛나는 분석력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리더의 심리를 살피고, 조직의 리듬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필요할 땐 스스로를 감추는 절제력을 갖추는 것이 전략적 통찰의 완성이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더더욱 "언제 나서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떤 이는 묻는다. "그렇다면 재능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그 재능은 지금, 이 관계 안에서, 모두에게 유익한가?"


재능은 방향 없는 칼이 아니다. 상황과 맥락, 인간의 정서를 이해하는 "윤리적 나침반"과 함께할 때 비로소 그 가치는 완성된다.


다섯째, 조직에서 살아남는 지혜


조조는 재능을 좋아했다. 그러나 권력을 더 좋아했다. 권력자는 언제나 통제 가능성을 중시한다. 양수는 똑똑했지만, 그 똑똑함이 타인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는 계산하지 못했다.


지금 이 시대, 정보의 속도는 빠르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그 재능이 공동체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다.


조직은 지식보다 관계로 움직이고, 이성보다 감정에 흔들릴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전략적 재주"는 칼날과 같다. 잘 쓰면 빛나지만, 자칫하면 피를 부를 수 있다.


양수의 이야기는 그래서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우리가 똑똑함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똑똑함을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의 태도다.


이 고사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재주는 실력이다. 그러나 그 실력을 사용하는 방식은 또 다른 전략이다.


양수의 문제는 단순히 재주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재주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되 "전략적 겸손"이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상사의 불안과 질투, 권력자의 두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잉 해석과 과도한 앞서감을 반복했고, 결국 그것이 자멸을 부른 것이다.


필자가 오래전 선배와 함께 일본에 출장했을 때 일화다. 선배는 일본어에 능통했음에도 상사가 일본말을 못 하자, 자기도 할 줄 모른다고 해서 영어로 회의를 한 적이 있다.


업무 후 술자리에서 조용히 선배한테 물었다. 좋은 기회인데 "왜, 일본말을 할 줄 모른다고 했나요?" 묻자, "상관이 모르면 나도 같이 몰라야 하는 법이다." 그 후 선배는 중용됐다. 이 말은 지금도 필자한테 교훈처럼 남아있다.


오늘날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유사한 상황은 반복된다. 어떤 이는 과도한 직언과 날카로운 통찰로 상사의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어떤 이는 조용한 실행으로 신뢰를 얻는다.


진짜 '전략가'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재주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빠른 분석력과 날카로운 통찰은 분명 귀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심리를 누르고, 공동의 리듬을 망가뜨릴 때, 그 자산은 오히려 독이 된다.


전략은 단지 "이기는 법"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언급했듯이, 양수의 비극은 재주의 부족이 아니라, 전략적 균형 감각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이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재주는 빛나야 하되, 눈이 부셔선 안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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