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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면

신념과 권력 사이의 위태로운 균형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은 헌법 제20조, 제2항에서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근대 민주주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인 정교분리를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의 중심 무대나 선거철만 되면 종교계 인사들의 발언이나 특정 정당과의 밀접한 관계가 언론에 오르내린다.


표면적으로는 "개인 의견"일지 몰라도,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종교 지도자의 발언은 결코 사적인 발언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렇다면, 종교의 정치 개입, 왜 문제가 될까?


종교는 신념의 영역이고, 정치는 권력의 영역이다. 이 둘이 만날 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중립'이다.


정치가 종교의 도덕성을 빌려 정당성을 얻고, 종교는 정치권의 권력에 기대어 입지를 강화하려 할 때, 양측 모두 본래의 가치를 훼손당한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할 경우 다음 세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정치적 편향에 의한 신앙의 왜곡


종교는 본래 모든 신자에게 열린 공동체지만,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순간 공동체 내부의 균열이 발생한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신자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종교의 근본 가치는 편향된 메시지로 오염될 수 있다.


둘째, 유권자의 자율성 침해


종교 지도자의 정치적 발언은 신자들에게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선택을 유도한다면, 이는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셋째, 정치적 책임 회피와 권력의 도구화


종교는 표면상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정치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반면, 정치권은 종교적 조직력을 표몰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선거 후에는 뒷거래나 특혜 시비가 잇따르며 정경유착 못지않은 정교유착이 일어난다.


종교가 사회 참여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치와 완전히 단절하다는 말은 아니다. 종교가 정의, 인권, 평화와 같은 공공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오히려 사회의 건강한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 정치권력과의 유착, 선거개입 같은 명백한 "정치 행위"다.


따라서 종교계는 스스로 "윤리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 하며, 정치권 역시 종교를 표밭으로 간주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교분리는 단지 헌법 조항이 아니라, 민주사회의 기본 질서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계약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신념은 권력을 넘었을 때 빛난다"라는 말이 있다는 점을 참고했으면 한다.


정치는 현실을 다루고, 종교는 이상을 추구한다. 둘의 역할은 다르지만, 서로를 감시하고 긴장감을 유지할 때 건강한 사회가 유지된다.


하지만, 신념이 권력의 도구가 될 때, 결국 신념도 권력도 함께 타락한다. 한국 사회가 정교분리의 정신을 다시 되새겨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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