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 보이지만 다르지 않은 권력의 시간
정치는 변화의 예술이라지만, 여의도에서의 정치는 오히려 반복의 드라마에 가깝다. 배우가 바뀌고, 무대 장치가 조금 세련되기도 하지만, 시놉시스는 여전히 익숙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권 초에는 청산과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개혁의 칼날은 무뎌지고, 청산의 기준은 선택적이 된다.
그리고 정권 말기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존 질서와 타협하며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이 모든 흐름은 마치 과학적 평행이론처럼 정교하게 반복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평행이론은 "유사한 조건이 다른 세계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가설이다.
여의도 정치의 맥락에서 보면, 각기 다른 정당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동일한 권력 구조와 유사한 정치 환경 속에서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간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은 오래가지 못하고, "불가피한 현실 정치"라는 변명이 그것을 대체한다.
선출된 권력이 권위화되고, 비판에 방어적으로 반응하며, 결국 그들만의 언어와 논리로 국민과의 거리감을 키운다. 이쯤 되면 "다시 돌아온 과거"와도 같다.
이 현상의 근본에는 구조적 원인이 존재한다. 승자독식의 권력 구조, 공천과 입법에서의 당론 중심주의, 행정부와 입법부의 명확하지 않은 권한 배분, 당내 민주주의의 취약성, 미디어와의 전략적 공생 등이 얽혀 있다.
결국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들어서도 이 구조의 안에서 빠르게 닮아간다. 적폐청산을 외치던 이들이 어느 순간 적폐로 지목되고, 개혁의 선봉에 섰던 이들이 기득권으로 회귀한다.
다른 이념, 다른 인물이지만, 다른 결과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여의도정치의 평행이론은 그렇게 실체가 되어버린다.
더 큰 문제는 이 반복의 폐해를 국민이 체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엔 다를 것이다"라는 기대는 점점 사라지고, "결국 똑같다"는 냉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투표율의 감소, 정치에 대한 무관심, 청년층의 탈정치화는 이 평행이론의 무서운 파급효과 다름 아니다.
정치는 결국 사회를 설득하고 함께 움직이는 기술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여의도 정치는 스스로의 언어 속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와 감각에서 멀어진 정치가 어디를 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쯤에서 물어야 한다. 여의도의 평행이론은 불가피한 귀결인가, 아니면 깰 수 있는 회로인가? 정치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 개입되는 영역이다.
반복을 운명으로 수용하는 순간, 정치의 본질은 사라진다. 변화를 이야기하는 정치인이라면 그 변화의 출발점이 "자기부정"에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의 권력자들과 어떻게 다를 것인가를 명확히 말하고, 말한 것을 실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권자들은 더는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의 '비선형성'이다. 이전과는 다른 궤적, 새로운 언어, 그리고 실질적인 제도 개혁을 감행할 수 있는 결단, "정치가 정치 같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웃어 넘기기엔, 지금의 위기는 너무 구조적이고, 국민의 신뢰는 너무 희박하다.
변화의 물결은 밖에서 시작될 수도 있지만, 진짜 변화는 안에서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제도 속에서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용기 있는 정치인, 기득권 구조를 스스로 부수는 결단력, 그리고 무엇보다 유권자의 감시와 성숙한 선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일이지만, 구조를 이기지 못한 사람은 그 구조의 일부가 된다. 여의도 정치가 평행이론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려면, 진부한 반복을 멈추고, 진정한 차이를 증명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같은 이야기를 다른 이름으로 반복하는데 국민은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