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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살며 생각하며

법정 스님이 입적(2010.3.11)하신지도 벌써 12년이 다 돼가는 것 같다. 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생사 경계가 어떠하십니까?" 질문에 "원래부터 없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마지막 법어를 남기실 만큼 생사마저 무소유 삶을 살지 않으셨나 싶다.


당시 생중계 방송됐던 스님의 다비식은 전남 송광사에서 고인의 뜻에 따라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않고 진행됐다. 물론 조화나 부의금도 받지 않았으며 통상 의례인 사리조차 수습하지 않았다.


특히 스님은 입적하기 전날에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그에 따라 스님이 집필한 책들은 모두 절판된 것으로 이해된다.


다행히 오래전에 구입해 보관하고 있던 "무소유"가 있어 다시 꺼내 들었다. 오래전에 읽고 책장 깊숙이 처박혀 있던 걸 다시 펼치니 -다소 꼬질꼬찔하지만- 감회가 새릅다.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우수영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상과대학에 다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삶과 죽음을 고민하다 1955년 통영 미래사로 입산해 효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셨다.


그 후 28세에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으며 이후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의 선원에서 수행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송광사 수련원장 등을 지내셨다.


1974년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이후 송광사 불일암에 기거하시면서 1976년에 무소유 등의 책 집필을 통해 대중과 교감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법정이 주장한 진정한 무소유는 대체 어떤 것일까?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는 게 법정이 말하는 무소유 정의이다.


선물 받은 비싼 난 2개를 법정이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야 하는 형편임에도 난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을 다시 친구에게 선물했다는 일화가 있다.


즉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을 쓰게 된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법정은 친구에게 난을 보낸 후 아주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이때부터 하루에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했으며, 난을 통해 무소유 진리를 깨닫고 터득했다고 한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얽매인다고 할 때 주객이 바뀌어 우리는 물질에 구속당하기도 한다.


즉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없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버린다. 나의 실체도 없는데 그밖에 내 소유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의 역사는 어찌 보면 소유의 역사처럼 느껴진다. 더 많은 내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논 99마지기 갖고 있는 사람이 1마지기 가진 친구한테 100마지기 채우겠다며 그걸 달라고 하는 속담이 증명해 주지 않나 싶다.


무소유는 땅끝마을 해남의 가난한 시골 소년이 탐욕과 무지의 세속을 벗어나 무아와 무욕심의 삶을 이루는 과정들이 여과 없이 담긴 책으로 이해된다.


소유욕 앞에서는 한정도 없고 휴일마저 없는 것이 인간인 것 같다. 마치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끝없이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살고 있지는 않은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책을 통해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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