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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증후군" 고찰

혼자 떠받친 하늘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스 신화 속 거인 아틀라스는 신들의 전쟁에서 패해 영원히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았다.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짐, 홀로 견뎌야 하는 무게였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이 아틀라스의 그림자를 사회 곳곳에서 발견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 공동체 속에서 모든 짐을 혼자 떠안고 버티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아틀라스 증후군(Atlas Syndrome)"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경쟁과 성과를 요구하면서도, 그 부담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왔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강박은 바로 이런 사회 구조가 길러낸 산물이다.


책임을 나누는 문화보다 "끝까지 버티는 개인"을 더 높이 평가하는 풍토가 아틀라스 증후군을 확산시켰다.


겉으로는 "성실하다", "책임감이 강하다"는 칭송을 받지만, 그 이면에서는 자기 소진이 빠르게 진행된다.


장시간 노동, 돌봄의 과중한 부담, 사회적 책임까지 혼자 떠맡은 채 무너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한국 사회의 높은 번아웃 지수, 세계 최상위권의 자살률은 바로 이 "혼자 짊어진 하늘"의 결과 아닐까 싶어 많이 안타깝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개인이 모든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가? 아틀라스가 떠받친 하늘은 공동체 전체가 나눌 수 없는 짐이었지만, 현실의 하늘은 다르다.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사회의 짐은 나눌 수 있고, 나누어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공동체가 돌아간다고 믿는다.


그것이 바로 아틀라스 증후군을 구조적으로 고착화시키는 힘이다. 진정한 강함은 혼자 버티는 능력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누는 지혜다.


이는 개인에게만 필요한 태도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 역시 제도와 문화 차원에서 무게를 분산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돌봄 노동을 가정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하는 것, 과로를 개인의 성실성으로 포장하지 않고 건강권의 문제로 다루는 것,


또 실패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적 학습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 모든 것이 아틀라스 증후군을 완화시키는 길이다.


아틀라스는 신화 속에서 영원히 하늘을 떠받쳐야 했지만, 현실의 우리는 다르다. 우리가 함께 떠받친다면, 그 하늘은 더 단단히, 그리고 오래 버틸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인한 개인"이 아니라, "연대하는 사회"다. "혼자 떠받친 하늘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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