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앞만 보게 되는가

"터널 시야 현상"이 만들어내는 현대인의 착시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운전 중 긴 터널에 들어서면 이상한 감각이 찾아온다. 주변 풍경은 사라지고, 오직 정면의 작은 빛 하나만 보인다.


좌우는 어둠에 잠기고, 선택지는 '전진'뿐이다. 이 현상을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터널 시야"라 부른다. 그런데 이 현상은 단지 도로 위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 감정, 인간관계, 심지어 인생의 선택 속에서도 반복된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터널 시야 현상"이다.


첫째, 위기 속에서 시야는 좁아진다.


터널 시야 현상은 스트레스, 공포, 분노, 집착 같은 강한 감정이 몰려올 때 나타난다. 뇌는 "생존 모드"로 전환되고, 가장 위협적인 것 혹은 가장 집요하게 붙잡고 싶은 것 하나에만 집중한다.


그 순간 우리는 다른 가능성, 다른 사람의 입장, 장기적인 결과를 보지 못한다. 오직 "지금 당장 이것만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문제는 이 집중이 언제나 현명한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많은 경우, 터널 시야는 판단력을 흐리고 관계를 깨뜨리며 선택의 폭을 스스로 줄이는 함정이 된다.


둘째, 분노와 집착은 시야를 더 좁힌다.


누군가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낄 때, 억울함에 사로잡혔을 때, 사랑에 지나치게 매달릴 때 - 이 모든 순간에 터널 시야는 더 짙어진다.


"저 사람만 문제야", '이 일만 해결되면 다 끝이야" "이 선택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울 때 우리는 이미 터널 안에 깊이 들어와 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터널 시야는 위험하다. 상대의 의도, 맥락, 사정은 보이지 않고, 내가 느낀 상처와 분노만 확대된다. 그 결과, 말 한마디가 칼이 되고, 오해는 단절로 번진다.


셋째, 현대 사회는 터널을 더 길게 만든다.


빠른 속도, 성과 중심 문화, 비교와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는 터널 시야를 더욱 강화한다. 우리는 늘 "뒤처지면 안 된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끝이다"라는 압박 속에서 산다.


이 압박은 생각을 단순화한다. 복잡하게 고민할 여유를 빼앗고, 단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몰아붙인다.


성공도, 돈도, 인정도 모두 중요해진 순간, 우리는 인생 전체를 보지 못한 채 "성과의 터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잃어버린 사람들과 감정들이 보인다.


넷째,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법은 '멈춤'이다.


터널 시야에서 벗어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멈추는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을 잠시 미루고, 감정을 한 박자 늦춰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 나는 무엇에 너무 과몰입하고 있는가?"

"이 문제 말고 내 삶에 중요한 것이 또 무엇이 있는가?"

"지금의 감정이 1년 뒤에도 같을까?"


이 질문 하나하나가 터널의 벽에 작은 균열을 낸다. 균열 사이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비로소 다른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다섯째,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터널 시야가 위험한 이유는, 인생을 "하나의 직선"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곡선과 우회, 되돌아감과 멈춤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막힌 것처럼 보이는 길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돌아가는 길이 더 안전하고 더 오래가는 길일 때도 많다.


여섯째, 빛은 언제나 정면에만 있지 않다.


터널 끝의 빛만을 보며 달릴 때 우리는 희망을 본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빛이 우리를 더 깊은 터널로 이끌기도 한다.


진짜 빛은 정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돌렸을 때 비로소 보이는 옆길과 사람, 그리고 쉼표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터널 시야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계속 머물지 않는 용기다.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시야를 넓히는 순간, 우리는 다시 인생의 풍경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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