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아는 정치
정치는 본래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이다.
그러나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권력의 유지와 이익의 추구에만 몰두하게 되면, 정치의 품격은 급속히 추락한다.
그때 등장하는 모습이 바로 "후안무치"의 정치다. 후안무치란 말 그대로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당당하게 변명하고 남을 탓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정치에서 부끄러움이 사라지면 책임도 사라진다. 잘못된 정책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주어도 사과하지 않고, 공적인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해도 스스로 물러날 줄 모른다.
오히려 상대를 공격하거나 여론을 호도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희석시키려 한다. 이러한 모습이 반복되면 국민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고, 정치 자체를 냉소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동양의 고전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치 지도자의 덕목으로 '수치심'을 강조해 왔다. 공자는 사람이 지켜야 할 중요한 마음 가운데 하나로 '염치'를 꼽았다.
염치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며,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태도다.
염치가 있는 사회에서는 작은 잘못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염치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큰 잘못조차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가게 된다.
정치가 후안무치해지면 국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정책은 책임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공공의 문제는 정쟁 속에서 방치되기 쉽다.
정치인은 국민을 설득하기보다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며 갈등을 키운다.
결국 정치가 사회를 통합하기는커녕 오히려 분열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품격은 정치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의 선택과 감시 속에서 형성된다.
국민이 정치인의 말과 행동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정치도 달라질 수 있다.
잘못을 해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환경에서는 후안무치 한 정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치가 부끄러움을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서서히 힘을 잃는다. 반대로 정치가 염치를 되찾는 순간, 신뢰는 다시 살아난다.
국민 앞에서 책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물러날 줄 아는 정치, 잘못을 고치려는 용기를 가진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의 품격은 거창한 이념이나 화려한 수사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정치가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끄러움을 하는 정치"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그것이 후한 무치의 정치를 넘어서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