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살며 생각하며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자신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설명을 한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배웠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부위에 따라 다르게 설명하듯이 말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같은 사안에 대해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는가 하면,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무원과 민간인 등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각기 서로 다른 의견을 '우후죽순'처럼 내놓고 있는 것 같다. 건강한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긍정적 시각과 또 다른 시각이 양립하기도 한다.


각자 주장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나름 근거가 있고 공감되는 점이 많다. 하지만 이렇게 각자가 자기 입장에서의 주장만을 고집하다 보면 자칫 문제 해결이 요원해질 수가 있다. '아직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비판에도 소위 많은 지식인들이 TV 등 언론을 통해 각자 자기주장이 옳다고 침 튀기며 우기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상대방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경청하기보다는 자기주장에 능숙한 모습을 많이 목격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경청하기보다는 내가 주장할 내용을 요약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 의견은 건성으로 듣고 내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다 보니 대화의 초점이 어긋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 때로는 상대방 대화를 끊고 자기 의견을 말하는 실례를 범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오래전에 작고하신 법정 스님과 관련된 일화를 지금도 많이 인용한다. 스님께서는 "대화할 때 귀와 눈을 상대방을 향해 몰입하시면서 리액션을 하셨다" 고 한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감히 끼어들기 어려울 정도로 경청하시는 모습이 경건하게 보였다는 후문이다. 정말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할 귀한 실천 아닌가 싶다.


아울러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왜냐하면, 도덕이건 욕망이건 선입견과 편견의 잣대를 버려야 사회현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 십 년 일해서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해도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살 수 없는 더러운 세상!" 이렇게 세상을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도덕주의자로서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는 이바지할지 모르지만 부동산 투자에는 성공할 수 없다는 걸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규정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관점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대부분 도덕적인 관점을 우선해서 사회현상을 바라보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는 치명적인 사고의 결함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매주 토요일마다 여러 주장을 하면서 군가를 부르며 광화문 거리를 행진하던 소위 '태극기 부대' 사람들도 나름 자신들의 잣대로 가장 큰 애국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서대문에서 집결해 광화문으로 진출하면서 노동가를 부르는 사람들도 별반 아니다. 하지만 거리의 시민들은 그 사람들로 인해 교통체증과 큰 소음에 눈살을 찌푸린다. 안타깝게도 이런 외눈박이 시각이 여러 계층과 분야에 상존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또 '모든 걸 시장에 맡겨라'하며 시장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반시장주의적인 정책을 아주 쉽게 내놓는 걸 보게 된다. 심지어 그들은 아주 역설적이게도 가장 반시장적인 공간에서 그런 발언을 한다. 실예로, 대학의 많은 경제학과 교수들이 시장주의를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자기는 철저히 시장과 분리되어 입시제도와 교육정책에 의해 보호되는 상아탑 안에 갇혀 있다.


또 노동자에게는 노동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교수 임기는 연구의 안전성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년이 65세까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왜 3D 업종을 기피하느냐?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식은 손에 물 묻히는 일조차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얼마나 이중적인 행태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지식인, 사회지도층이라 부르고 있다.


얼마 전에 자신의 아들, 딸의 진학을 위해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등 여러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 소위 사회지도층의 이해하기 힘든 일탈이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만연하고 있다. 이렇게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깊이 병들어 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건강성 회복을 위한 빠른 치유가 요구된다.


지금부터라도 "불편하고 속상하겠지만 그냥 이해하고 견디겠다" 하지 말고, 주장하고 힘을 결집해서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도래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뒤켠에서 불평불만하는 것으로 머문다면, 사회는 전혀 변하지 않게 된다. '국가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주권의식을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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