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송면규 칼럼니스트 Aug 19. 2023
오랜만에 팔당역 뒤 쪽에 있는 텃밭에서 호박잎과 애호박 그리고 깻잎과 고추 오이를 따서 광주리에 담았다. 그냥 방치했음에도 생각보다 건실하게 잘 자라준 것 같다.
폭염 속에서 잠시 고개 숙여서 불과 몇 개를 땄을 뿐인데 온몸이 땀으로 범벅 인다. 허리도 많이 아프고 벌레가 윙윙거리는 걸 보면 농사라는 걸 쉽게 보는 게 아니라는 공부를 한다. 밭 가꾸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 대충 방치해 버리고 얼마 되지도 않은 텃밭에서 낑낑거리고 있다.
근처에서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 지인이 경운기 등 장비를 가져와서 땅을 파고 여러 모종을 심어 놔서 필자는 그냥 수확만 하는 것임에도 이것 마저도 무더워서 그런지 힘겹다.
문득 어릴 때 시골에서 한여름 더위에 땀 뻘 뻘 흘리며 논에서 농약 치시던 농부들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러면서 막걸리 한 잔 들이켜면서 씩~~ 미소 지으시던 모습들이 클로즈-업 된다.
광주리에 잔뜩 담긴 갖가지 채소를 들고 돌아서려는 순간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 다시 고개 숙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늙은 호박이 "왜 나를 외면하냐" 손짓하고 있는 것 아닌가.
반가움에 커다란 늙은 호박을 광주리에 담으면서
문득 늙어가는 나 자신이 오버랩된다. 식물도 사람도 이렇게 시간에 따라 늙어 가면서 또 서서히 익어가는 것 아닌가 싶다. 색소폰을 꺼내 서유석의 '가는 세월'을 바람결에 날리면서 세월의 무상함과 감성에 젖어 본다.
사회에서의 왕성한 활동은 이제 차츰 거하면서 글이나 쓰며 늙은 호박처럼 분주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라고 늙은 호박이 넌지시 알려주는 것 같아 동병상련을 느낀다.
텃밭에서 환희 내려다 보이는 하남 스타필드와 한강을 바라보면서 숨 가쁘게 오가는 차량 행렬 속의 군상들은 대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금 이 시간이면 연인과 또는 가족과 양수리 나들이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예봉산 자락을 오르면서 꽤 오랫동안 방치해 놓은 것 같아 괜히 머쓱해진다. 주인을 잘못 만나면 땅도 주인을 외면하지 않나 싶다. 문득 "곡식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한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반성하면서 요즘 전국적인 열풍이 불고 있다는 맨발 걷기를 위해 잠시 산 자락을 오른다. 잔디와 돌멩이들이 제멋대로 내 뒹굴고 있다는 건 주인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만간 나만의 공간을 새롭게 꾸며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참에 몽골 텐트도 한 개 갖다 놓고 가끔씩 지인들과 한강 노을 바라보며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시간을 가져 봐야겠다. 세월의 빠름을 탓하지 말고, 그 세월에 올라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