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살이 노트
25년 연말 기록.
불과 몇 주전만 해도 소소한 우리의 크리스마스,
이사 오고 보내는 첫 연말로 한껏 들떠있었다.
가끔 해외에 살다 보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평소 가족 단톡방이 아니면 전화가 올 일은 거의 없었던 동생의 전화가 화면에 보였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놀라고 정신없던 것도 잠시, 부랴부랴 짐 챙기고 한국행 비행기를 찾아보고 있었다.
제발 내가 갈 때까지, 내일까지라도 버텨달라는 바람이 무색하게 곧이어 돌아가셨다는 소식.
어쨌든 오늘 당장 한국으로 가는 것이 먼저였다.
겨울은 추워서 피하던 계절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내가 참 안 좋아하던 계절이기도 하다.
그 추운 겨울, 한국에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 ‘연말’은 북적북적하고, 춥지만 따뜻하고 설렘이 가득한 것이었는데..
공허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혼란스러운 연말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 할머니는 그냥 ’ 할머니‘가 아니었다. 엄마 아빠만큼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부모 같은 존재였다.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하면 ’ 네가 좋아서 하는 거지? 잘돼서 하는 거 맞지?‘ 하던 진짜 내 편.
가을에 한번 올 것을, 연말로 미루지 말고 전화 한번 더 할 것을,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후회와 자책들이 남았다.
아빠때와 다른 것은, 갑작스럽긴 했지만 할머니 연세가 연세인지라 주체 못 할 감정은 아니었다.
당연히 슬프고 헛헛하지만 납득하지 못할 이별은 아니다.
문득 떠오르고, 공허할 테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빈자리인 것이다.
화장 후 산소에 이장하면서 오랜만에 아빠의 유골함을 보았다.
나도 내 아이의 ’ 부모‘ 이지만 엄마인 나도 부모라는 존재는 아직도 울타리 같아서 아빠와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나니 가슴 한편이 비어있는 느낌이다.
장례를 치르며 즐거운 연말에 이렇게 많은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고 떠나가는구나 싶었다.
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무엇이고 연말이 다 무엇이겠는가.
그중, 나와 동갑인 분을 보게 되었다. 상주는 그의
부모님이었다.
숙연한 마음이 들면서 올 한 해 나와 가족들이 무탈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지내다가도 감정선이 복잡한 나는 혼자 생각할 틈이 생기면 불안감에 휩싸인다.
아빠를 떠나보냈을 때의 경험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들과 생각들을 정리하고 충분히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한 애도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공감을 바라며 구구절절 말하는 것도 이제는 내키지 않는다.
이렇게 나의 생각을 적어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두어서 다행이다.
겨울을 안 좋아했던 이유는 살아오면서 힘든 시기들은 겨울이 오면 몸도 마음도 유난히 더 춥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올 겨울도 너무너무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