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대신 유모를 선택하는 나라
우리 집에서 낯선 동거
인도네시아에는 한국과 다른 육아 방식인 '유모 문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보육형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만 이곳은 집에서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곳의 유모 형태는 고용주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다. 신생아 전문 케어부터 특정 언어 능력, 혹은 육아의 메인은 엄마가 하되 옆에서 돕는 보조 역할까지 각자의 사정에 맞게 조율하고 선택한다.
가정에서 1:1로 아이를 전담하는 유모가 일반적이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보육형 기관은 드물다.
인건비 그 너머, 상부상조 정신
인도네시아에서 유모 문화가 일반적인 이유는 단순히 부유층의 전유물이라거나 저렴한 인건비 때문만은 아니다. 인구가 많은 나라이니 여러 지역에서 들어오는 노동력의 공급과 더불어 그 바탕에는 'Gotong Royong'(고통 로용)이라는 인도네시아의 핵심 정신이 깔려 있다.
한국어로 하면 '상부상조라 할 수 있는 이 공동체 정신은 육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유모가 가족의 일원이 되어 아이의 제2의 엄마 역할을 하며 애착형성 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큰 거부감이 없는 분위기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을 지나며 집안일을 돕는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이만 전담하여 돌보는 준전문직으로 진화되어 지금 인도네시아의 유모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유모들의 공동 육아
나의 경우 아이가 어릴수록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맡긴다는 게 심적 부담이 있어서, 아이 놀이 시간에만 보조적인 도움을 받는 방식을 선택했다.
사실 이곳은 보육 기관이 부족하고 대부분 유모에게 전담하는 편이라 한국식 공동 육아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유모를 고용하곤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주거지가 하나의 커뮤니티가 되어 한국에서 같은 단지 엄마들이 공동 육아를 하듯, 이곳에서는 유모들의 공동 육아가 이루어진다. 아파트로 이사 혼 직후, 유모들끼리의 무리가 곧 아이들의 무리가 되는 시스템을 보며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내 이해하게 되었다.
확실히 육아는 머릿수라고, 집에서 아이를 케어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곳 엄마들에게는 매우 큰 장점이다. 우리 아이도 돌 전 아기 때부터 도우미 언니와 놀며 자란 덕분에 애착 형성이 잘 되어 언니를 잘 따르고 가족처럼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인니어는 덤이다.
배우자를 찾는 일만큼 어려운 유모와 '합' 맞추기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우리 가족에게 맞는 사람을 잘 구했을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인니어 중에는 '가사 도우미나 유모를 찾는 것은 배우자를 찾는 것만큼 어렵다'(Cari ART atau Suster itu cocok-cocokan, kayak cari jodoh)는 말이 있다.
유모를 양성하는 전문 회사도 있고 수소문하면 구할 방법은 많지만, 어떤 사람이 우리 집에 들어오느냐는 복불복이다. 경력이 거짓인 경우도 허다하고 회사가 모든 것을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좋은 방법은 경험과 피드백이 확실한 사람을 소개받는 것이다.
막상 함께 지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특정 능력이 아니라 결국 그 사람의 '인성'이다. 소중한 내 아이를 돌보는 동시에 가족과 한 집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건 훔치지 않기, 거짓말하지 않기, 약속 지키기, 아이에게 막대하지 않기, 아이 사진 개인 SNS에 올리지 않기 등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는 '빌런'들도 존재하기에 항상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유모를 쓰는 주변만 보더라도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다. 내 아이를 본인 아이처럼 봐주길 바라는 것도 무리지만, 적어도 '일'로서 피해는 끼치지 않아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그조차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완벽한 엄마라는 강박을 허물고 얻은 평온
다행히 지금 우리 집에서 일하는 친구는 우리와 합이 잘 맞는 편이고 인성이 좋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몇 년간 잘 지내고 있다. 이 또한 이곳에서 우리가 받은 큰 복이라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다.
한국인 엄마들은 아이를 맡기면서도 본인이 메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곤 한다. 반면 현지인들은 전적으로 유모를 믿고 맡기는 모습을 보며 문화적 차이를 느끼기도 한다.
엄마의 성향과 주어진 환경에 따른 선택일 뿐, 공통점은 내 아이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일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장단점은 존재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현실적 합의점을 찾아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나 홀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타인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오늘도 그 도움의 손길 덕분에 식탁오피스에 앉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육아하면서 천천히 홀로 즐기는 밥상과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과 같은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엄마의 심적 여유와 그로 인한 가족의 평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그 비용 이상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